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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신진서가 몰고 온 바둑 열풍…"국민적 관심 필요한 때"

입력 : 2023-08-31 12:45:50 수정 : 2023-09-03 11:4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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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스포츠부장

“바둑에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바둑판 위에 의미없는 돌이란 없다.”

 

한때 ‘미생’이란 드라마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미생은 바둑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주인공 ‘장그래’가 프로입단에 실패한 후 냉혹한 현실에 던져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을 바둑에 비유해 의미있게 풀어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도 바둑은 주인공 ‘문동은’의 심리를 반영하는 매개체로 등장했다. 문동은은 바둑의 매력을 ‘침묵 속의 욕망’이라고 표현했다. “목적이 분명했고, 상대가 정성껏 지은 집을 빼앗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니, 아름답더라”라고 그 이유를 말한다. 바둑에 대한 함축적 표현이자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준 대사였다. 

 

흔히 바둑을 인생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 인생에서 매 순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모두 의미가 있다. 이것은 바둑판 위에서 바둑 돌 하나하나가 모두 쓰임이 있는 것과 같다. 인생이 늘 그렇듯 바둑도 일단 돌을 놓고 나면 물릴 수 없다. 그 속에는 온갖 인생이 감춰져 있고, 예의와 범절도 담겨있다. 

 

나에게 바둑은 아련한 추억이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 바둑학원에 가게 됐다. 당시 아이를 둔 엄마들 사이에서 집중력과 뇌 개발 등에 효과적이라는 ‘바둑의 효과’가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끌었다.

 

엄숙했던 학원 분위기와 같이 바둑을 두었던 친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바둑은 이기는 것 보다 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라는 선생님의 명언까지도. 내가 경험한 바둑은 인류가 만든 놀이 중 가장 변수가 많고, 심오한 놀이 같았다.  

 

세월이 지난 지금, 바둑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2016년 우리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세기 바둑 대결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인류와 AI의 대결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에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했다.

 

그리고 현재 한국 바둑의 중심에는 국내 바둑랭킹 1위 신진서(23) 9단이 있다. 2000년생인 신진서는 어린 시절 ‘천재 중의 천재’로 불릴 정도로 영특했다고 한다. 5살 때 아버지가 운영하는 바둑교실에서 바둑을 처음 접했고,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뛰어넘는 실력에 이르렀다. 그는 오로지 '독학'으로 실력을 키웠다고 한다. 입단 이후에도 신진서의 재능은 독보적이었다. 현재 그는 44개월째 정상을 지키며 독주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 신진서가 또 한번 큰 일을 해냈다. 생애 처음으로 ‘응씨배’ 정상에 올라 선 것이다. 지난 23일 중국 상하이 창닝구 쑨커별장에서 열린 ‘제9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3번기 2국에서 신진서는 2000년생 동갑인 셰커 9단을 226수 만에 백불계로 꺾고 종합전적 2-0 완봉승으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응씨배는 ‘바둑 올림픽’이라 불리는 특별한 바둑 대회로, 4년마다 열린다. 대회 창시자인 고 잉창치 선생이 고안한 응씨 룰을 사용한다. ‘전만법’이라고 불리는 응씨룰을 적용하는 응씨배는 집이 아닌 점으로 표시한다. 우승 상금 규모도 크다. 단일 대회 최고 상금인 40만 달러(약 5억3600만원)와 우승트로피가 주어진다.

 

이번 우승은 한국 바둑계에서도 의미가 깊다. 한국은 2회 연속(7·8회) 중국에 넘겨줬던 우승컵을 지난 2009년 이후 14년 만에 되찾아오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응씨배에서는 초대 우승자 조훈현 9단을 비롯한 서봉수·유창혁·이창호·최철한 9단 등 한국이 5회, 창하오·판팅위·탕웨이싱 9단 등 중국이 3회 우승을 기록했다. 

 

신진서는 이제 다음달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정조준한다. 그는 “아시안게임 바둑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것은 큰 영광”이라며 “아시안게임은 개인전 보다 팀 성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 준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진서의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 2개를 따는 것이라고 한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13년 만에 열리는 바둑 종목은 남자 개인전과 남자 단체전, 여자 단체전에 모두 3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신진서 덕분에 바둑이 다시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됐다. 바둑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바둑계 관계자들은 한국 바둑이 다시 국민적 사랑을 받기 위해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신진서를 이을 어린 주자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또 바둑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과 바둑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도 확산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마지막으로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둔 우리 선수단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김민지 기자 minji@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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