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필요하다.
실망스러운 경기력, 한국 여자농구의 현주소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선수보다 연봉을 많이 받는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선수들이지만, 그 값을 전혀 못하고 있다. 1년 사이 한 쿼터 최소 득점 불명예 신기록이 연이어 나왔다. 지난 16일 우리은행은 신한은행전에서 1쿼터 0점을 기록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 “외신에 나올까 겁이 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굴욕적인 기록이었다.
경기력이 심각하다. 평균 득점이 60.4점으로 하락했다. 공격을 이끌 에이스가 팀당 1명 정도뿐이다. 에이스가 부상으로 이탈하기라도 하면 팀은 와르르 무너진다. 공을 돌리다가 최후에 억지로라도 골밑에서 득점을 책임져줄 외인도 없다. 올 시즌부터 합류한 아시아쿼터 선수도 위력적이지 못하다. 결국 무리한 난사로 공격은 마무리된다. 야투율과 평균 득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가 ‘선수 수급 문제’다. 급감하고 있는 인구 수에 스포츠계가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엘리트 여자농구는 특히 심각하다. 선수가 부족해 대회도 제대로 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5월 2024 연맹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대회에서 그 현실을 단적으로 볼 수 있었다. 청주여고와의 맞대결에 나선 숭의여고는 4쿼터 종료 2분여를 남기고 12점을 앞서며 4강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변수가 발생했다. 1학년 전수지가 부상을 입은 것. 숭의여고는 그대로 경기를 포기했다. 5명의 선수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농구 경기에 필요한 최소 인원마저 채울 수 없어 경기를 놔버렸다.
어쩌다 한번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해 2023 한국중고농구 주말리그 왕중왕전 수원여고와 선일여고의 맞대결에서 수원여고는 ‘자격상실패’를 당했다. 5명으로 출전한 수원여고는 1쿼터 중반 조주희가 무릎 부상을 입어 4명이 됐다. 결국 고의적으로 파울을 하기 시작했고, 3명이 5반칙으로 퇴장당했다. 국제농구연맹(FIBA) 규정상 ‘경기 중 한팀의 선수가 경기장에 1명이 남게 되면, 그 팀은 자격 상실로 경기에 패한다’고 명시돼 있다.
선수 수급 어려움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해를 거듭할수록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여자농구 선수는 비전이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엘리트 최종 목표인 프로 진출은 하늘의 별 따기인데다 명문대 진학 수단조차 되지 때문이다. 남자 대학부는 고려대, 연세대 등 명문대에 팀이 있지만, 여자 대학부는 서울권에 팀이 1개도 없다.
중고농구연맹 관계자는 “남대부와 달리 여대부는 대학 네임벨류가 다소 떨어지다 보니 진학 수단으로 활용되지 못한다. 비전이 더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WKBL이 운영 중인 퓨처스리그가 진정한 신인선수들의 무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신인선수가 많이 뽑힌다면, 프로를 꿈꾸는 엘리트 선수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에서도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곤 있다. WKBL은 유소녀 캠프, 대회, 선수와 함께하는 ‘W-페스티벌’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6개 구단이 직접적으로 엘리트 중고교에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한다. 다만, 클럽 농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엘리트 선수 수급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농구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선수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손대범 KBS N 해설위원은 “위에서 아래로 계속 밀어줘야 한다. WKBL이 코치를 투입하거나, 지도자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엘리트 환경 조성을 지원해야 한다. 엘리트 농구는 굉장히 열악하다. 코치 혼자서 7~8명의 선수를 관리해야 하는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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