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없다.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올 시즌 사자에게 호랑이는 높은 벽이었다. 강력한 투·타(팀 평균자책점·팀 타율 1위)를 앞세워 정규리그 1위에 올랐다. 우승후보다운 면모였다. 삼성은 언더독에 가까웠다. 개막 전 하위권으로 분류됐다. 신구조화 속에 반전을 꾀했다. 2위를 마크, 뒤를 쫓았다. 다만, 상대전적에서 4승12패로 크게 밀렸다. LG와의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를 거쳐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까지 올랐지만 삼성의 우위를 점친 이는 많지 않았다.
부상 악재의 짙은 그림자 때문이다. 1선발 코너 시볼드가 정규리그 막판 전력에서 이탈한 것이 대표적이다. 오른쪽 견갑골 통증으로 재활에 매진하다 미국으로 향했다. 필승조 최지광은 우측팔꿈치 내측인대 손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좌완 투수 백정현은 평가전서 강습타구에 맞았다. 오른손 엄지 미세골절 진단을 받았다. 가을야구가 시작된 후에도 악령은 사라지지 않았다. 구자욱과 원태인이 경기 중 각각 좌측 내측인대, 오른 어깨 관절와순 손상을 입었다.
시리즈 전적 1승3패. 막다른 골목이다. 이제 1패만 더하면 그대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간절함을 안고 적진으로 이동했다. 가진 패가 많지 않다. 차, 포 다 뗐다. 벼랑 끝에서 마주한 불펜데이다. 삼성은 28일 KIA와의 KS 5차전을 앞두고 좌완 이승현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이승현은 올 시즌 내내 선발로 뛰었으나 포스트시즌(PS)에선 중간에 투입됐다. PO 3경기서 2⅓이닝 1실점(1자책)한 데 이어 KS 1차전(서스펜디드)에선 1이닝 1실점(1자책)을 기록했다.
무조건 총력전이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승현이 긴 이닝을 버텨주는 것이 베스트지만,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한 박자 빠르게 불펜진이 가동될 수 있다. 앞서 KS 4경기를 하는 동안 삼성 마운드는 평균자책점 5.82로 다소 부진했다. 하지만 이른바 ‘미친 선수’가 나타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김윤수의 경우 PO서 가장 위태로운 순간 등판해 원 포인트로 급한 불을 껐다. 150㎞대 강력한 직구로 상대를 압박했다. KS에서도 3경기 0의 행진 중이다.
DNA를 믿는다. 삼성은 과거 왕조를 세운 팀이다. 2011~2014시즌 4년 연속 통합우승을 일궜다. 특히 2013시즌 기억을 떠올려본다. 당시에도 삼성은 KS서 2패를 먼저 당한 뒤 1승을 더하며 한숨 돌렸지만 곧바로 패를 떠안으며 위기에 봉착했다. 거짓말처럼 남은 시리즈를 싹쓸이하며 기어이 왕좌에 올랐다. 역대 KS서 1승3패서 우승을 일군 팀은 삼성이 유일하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전력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래도, 삼성이라면, 팬들은 희망을 가져본다.
선수단도 마음을 다잡는다. 구자욱과 원태인은 완전하지 않은 몸 상태에도 광주 원정길을 동행한다. 더그아웃에서나마 힘을 불어주고픈 마음이다. 구자욱은 필요하다면 대타로라도 나가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세 경기 졌다고 해도, 광주에 가서 이기면 된다. 선수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다”면서 “나 역시 언제든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눈빛을 번뜩였다. 다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 김재윤은 “불펜에서 보고 있노라면, 어린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한다. 긴장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더라. 동료로서 정말 멋있더라”고 끄덕였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