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미국영화 ‘트위스터스’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서울 용산구 한 영화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엔 연출을 맡은 정이삭 감독과 주연배우 데이지 에드가-존스, 제작총괄 프로듀서 애슐리 J. 샌드버그 등이 내한해 참석했다. ‘트위스터스’는 토네이도가 일으키는 엄청난 피해와 그에 맞서는 이들을 다룬 재난 블록버스터다. 1996년 영화 ‘트위스터’를 잇는 28년 만의 속편이기도 하다. 14일 개봉 예정으로 세계 10대 영화시장 중 한국 개봉이 유독 늦은 편인데, 그렇게 ‘대진 운’을 따질 만큼 한국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트위스터스’는 한국서 흥행 돌풍을 ‘일으켜야만’ 한다. 기대치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북미 흥행과 달리, 그 외 대형 영화시장들에선 실망스런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박스오피스모조에서 9일까지 집계한 세계 흥행수치만 봐도 상황을 알 수 있다. ‘트위스터스’ 경우 북미 흥행수익이 2억1169만 달러인데 비해 그 외 지역 수익 총합은 7910만 달러에 그친다. 북미 대 그 외 지역 수익 비율이 73% 대 27%다.
개봉한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 세계를 상대로 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선 좀처럼 나오기 힘든 비율이다. 참고로 올해 여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중 북미 대 그 외 지역 흥행 비율을 보면 ‘인사이드 아웃 2’ 41% 대 59%, ‘데드풀과 울버린’ 49% 대 51%, ‘혹성탈풀: 새로운 시대’ 43% 대 57% 등으로 북미 외 지역 수익이 더 높은 게 상례다. 그러니 세계 흥행 기대치를 충족시키려면 한국서 어떻게든 만회해야 한단 얘기.
그럼 왜 이런 특이한 현상이 나오고 있는 걸까. 레딧 등 각종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들서 나오는 의견은 여러 가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원인설이 있다. 과거엔 북미서 흥행에 실패한 재난영화들조차 해외선 훨씬 많은 수익을 거둬들이는 게 상례였던 반면 지금은 북미보다 해외가 더 재난영화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기점이 대략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부터더란 관찰이다.
전 지구적 재난인 코로나19 팬데믹을 수년 동안 겪고 나니 이후부턴 자연재해든 인재든 재난 상황을 엔터테인먼트로서 즐길만한 정서적 여유가 휘발되고 오히려 피로감과 염증만 일으키게 됐단 것.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그런 식이라면 ‘트위스터스’가 북미선 대성공을 거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어진다. 미국 역시 코로나19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딘지 해석을 위한 해석이란 인상이 강하다.
그보단 ‘재난의 종류’ 측면에 관심을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이제 재난영화도 그 소재가 되는 재난 종류 선택에 있어 ‘국지성 흥행’ 정도로도 귀결될 수 있는 서브장르가 됐단 것이다. 단적으로, 토네이도 재난영화는 이제 ‘미국용 재난영화’가 될 수밖에 없단 것. 실제로 전 세계 토네이도 현상의 75%가 미국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엔 캐나다 남부지역, 멕시코 북부지역,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정도에서 일어나는 편이다. 그밖에 다른 나라들에선 다소 낯설고, 그만큼 그 위협감이 피부로 와 닿질 않는 구석이 있다.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1996년 개봉한 전편 ‘트위스터’는 같은 토네이도 소재이면서도 당시 북미 대 그 외 지역 수익 비율이 49% 대 51%였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상당부분 할리우드영화 세계시장 장악력이 정점에 이르렀던 1980~90년대와 지금을 비교하는 데서 차이가 생긴단 견해다. 당시만 해도 ‘북미 흥행 1위’란 정보 자체가 위력적 홍보문구였을 만큼 할리우드 동향을 의식하는 세계시장 분위기는 지금과는 차원을 달리했고, 특히 특수효과 기술 측면에서 할리우드가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앞서나갔기에 그저 굉장한 특수효과를 구경해본단 메리트 하나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그 어떤 소재든’ 경쟁력을 가졌었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일본 등이 차례로 자국영화 시장점유율 50%를 넘기며 할리우드 장악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또 아시아와 유럽지역 영화산업도 특수효과 기술을 향상시켜 어느 정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맞설 만한 ‘눈요기’를 갖춰나가게 됐다. 그러면서 각국 재난영화들도 각자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소재들로 재편돼갔다. 한국의 ‘판도라’ ‘백두산’ ‘싱크홀’ 등을 떠올려보면 쉽다. 일본은 ‘일본침몰’ 등 지진 소재가 흥행에 유리해졌다. 그렇게 다들 각자에 맞는 재난 소재들로 시장이 잘게 갈라지기 시작하자 ‘미국의 재난’ 토네이도 정도론 전 세계적 흥행을 담보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른 셈이다.
물론 ‘트위스터스’ 국내 흥행여부는 아직 내다보기 어렵다. 앞선 정이삭 감독 화제성도 존재하거니와 대진 운 차원에서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 하나를 더 짚고 넘어갈 필요도 있다. 사실 ‘트위스터스’는 애초부터 미국 내수시장을 꽤나 중요하게 고려해 기획된 영화인 듯하단 점이다. 북미 개봉 당시 정 감독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 도중 영화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언급을 담지 않았단 지적에 대해 “이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앞에 내세운단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고 답한 바 있다.
기후변화 문제를 놓고 강한 규제정책을 요구하는 건 미국서 민주당 진영 쪽이다. 그런데 미국서 EF3 이상 토네이도가 주로 발생하는 지역은 인디애나주, 텍사스주, 오클라호마주, 캔자스주 네브래스카주 사우스다코타주 아이오와주 등이며, 이들 중 캔자스주를 제외한 모든 지역 주지사가 공화당 소속일 정도로 이들은 보수색이 뚜렷하다. 한 마디로, 토네이도 피해가 자주 발생해 그만큼 관심도 많고 자신들 문제로 여겨 영화흥행 중심이 될 지역들이 공화당 지지 지역들이니 기후변화 문제를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단 유추도 가능해진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미국미디어 할리우드리포터에선 실제 토네이도 피해가 잦은 오클라호마주 등에서 티켓 매출이 두드러진다 밝힌 바 있고, 또 다른 미디어 데드라인에선 영화가 전혀 정치적이지 않단 점이 보수색 강한 지역서 환영받는 요인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철저히 내수용 전략으로 만들어진 영화란 얘기다. 이 같은 내수용 배려가 과연 한국 및 북미 외 지역 전반에선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주목거리다. 글로벌 진출을 놓고 내수전략과 수출전략 간 안배를 고민하는 K컬쳐 산업으로서도 한 번쯤 눈여겨봐야할 딜레마 지점이기도 하다.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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