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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談談한 만남] 성실함의 대명사에서 안암골 호랑이로...주희정 감독, “지도자 생활은 이제 걸음마 단계”

입력 : 2023-12-19 09:00:00 수정 : 2023-12-20 09:4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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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주희정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한없이 배워야죠.”

 

현역 시절부터 ‘성실’이란 단어가 따라 다녔다. 20년 동안 프로선수로 활약하면서 철저히 자신의 루틴을 지켰다. 성실함은 지도자가 돼서도 큰 강점이 됐다. 이제는 선수들에게 기본기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주희정 고려대 감독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프로 무대에서 지휘봉을 잡는 날을 꿈꾼다.

 

◆ 연습생 신화

 

주 감독은 프로농구 1호 연습생이다. 고려대 중퇴 후 나래(현 DB)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남들보다 일찍 프로 무대를 경험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다. 주 감독은 “집안이 워낙 어려웠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부양해야 했다”면서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신념이 확고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과 농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학업을 포기했다는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돈을 받으면서 농구를 할 수 있다는 자체에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선택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프로농구 초대 신인상의 주인공이었다. 중학생 때 시작한 철저한 자기 관리가 성공의 발판이 됐다. 주 감독은 “제가 철이 빨리 들었다. 만화방, 오락실을 갈 형편이 안 됐고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에 농구만 생각했다. 훈련이 끝나도 코트에 남아있었다”면서 “프로 입단 후에도 운동량이 많았는데 관심이 쏠리다 보니 주위 형들에게 시샘도 받았다. 눈치는 보였지만 어릴 때부터 밴 습관이었다. 농구 코트, 산, 웨이트 트레이닝장에만 머물면서 항상 준비했다. 그래서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성공 가도를 달렸다. 삼성 소속이었던 2000~2001시즌 챔피언 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KT&G(현 정관장)에 있었던 2008~2009시즌에는 정규리그 MVP를 받았다. 소속팀이 플레이오프(PO)에 탈락했는데 MVP를 수상한 것은 주 감독이 최초였다.

 

그는 “삼성에선 김동광 감독님, 김현준 코치님이 계셨고 문경은 선배, 강혁, 이규섭까지 합류해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어린 나이에 빨리 이뤘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제가 청소년 대표 출신도 아닌데 당시에 첫 성인 국가대표가 됐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진단서를 내고 나왔다. 제 농구 인생에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고 전했다.

 

MVP를 탄 비결에 대해서 주 감독은 “달리는 농구를 했는데 국내 선수 구성도 그렇고 외국인 선수들도 잘 맞았다. 왕성한 체력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큰 부상 없이 많은 경기에 나섰고 2016~2017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주 감독은 프로 20년 동안 1029경기를 소화했다. 프로농구 역대 최다 출전 경기 기록이다. 2위인 김주성 DB 감독(742경기)과 차이가 크다. 현역 중에선 함지훈(736경기)이 가장 많은 경기를 뛰었다. 1029경기 출전은 한동안 깨지지 않을 대기록이다. 주 감독은 “몸 관리의 효과도 있지만 근성이 남달랐다. 프로 4년 차까지는 정규리그가 45경기였는데 지금처럼 54경기였다면 더 늘어났을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비시즌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일주일만 나를 위해 쓰고 바로 시즌을 준비했다. 현역 시절 주희정은 스스로 채찍질을 너무 많이 했다. 장점이자 단점”이라면서 “후회는 없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졌더라면 더 알차게 프로선수를 했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고려대 주희정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 지도자의 길

 

은퇴 후 지도자 연수를 떠났다. 미국이 아닌 필리핀에서 연수를 진행했다. 이후 유럽을 돌며 경기를 참관했다. 주 감독은 “필리핀에서는 3개월 동안 객원 코치를 지냈다. 가까운 나라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공부는 자기 근처에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요즘엔 일본, 필리핀, 중국도 본다. 프로팀 감독이 되면 그때야 조금 더 멀리 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2018년 모교 고려대 코치로 돌아왔다. 당시에는 재학생 겸 코치로 화제를 모았으나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 주 감독은 “쉽지 않았다. 중퇴하고 프로에 갔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분들이 많았다. 부담은 됐지만 모교에서 후배들을 육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면서 “지금도 학교에 다닐 수는 있지만 안 좋게 보는 시선들이 있다. 지도자에 매진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코치 부임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감독대행을 맡았다. 2020년에는 정식 감독이 돼 지금까지 고려대를 이끌고 있다. 주 감독은 “초고속 승진이었다”고 회상한 후 “첫 해에 지휘하면서 선수가 쉬웠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선수들에게 기본기와 수비를 강조했는데 잘 안 됐다. 감독대행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원칙을 시종일관 똑같이 밀고 갔다. 정식 감독이 돼서도 똑같은 방향으로 가니 정상에 올랐다. 감독대행 때는 잘 풀릴 줄 알았으나 실패를 경험했다. 지금까지 많은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흘린 땀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지도자다. 그는 “항상 마음가짐을 중요시한다. 코트에서 거짓말을 하지 말고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면서 “선수들을 재미있게 해주고 싶은데 엄한 편이다.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 대학 농구의 현실

 

해마다 신입생을 선발하는 일도 중요하다. 주 감독은 “저는 인성을 많이 본다. 친구 관계, 주변의 평가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한 후 “그다음엔 수비하는 자세, 볼 없는 움직임만 보고 판단한다. 좋은 선수가 있다고 해서 와달라고 애원하진 않는다. 학교에 오는 재목들을 성장시키며 좋은 팀을 만들 뿐이다”고 설명했다.

 

최근 프로 지도자들 사이에선 대학 선수들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장에서 이들을 지도하는 주 감독은 냉정하게 바라봤다. 그는 “마음이 착잡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본다. 대학 선수들의 평가도 떨어지지만 프로선수들도 평가가 많이 내려갔다”고 짚었다.

 

이어 주 감독은 “그래서 기본기가 더욱 중요하다. 물론 대학 4년 동안 농구를 다시 배우기는 쉽지 않다. 프로에 가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들도 많다”면서 “중고등학생들이 매달 대회가 있더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고려대는 타 대학보다 연습 경기도 적다. 자체적인 훈련에서는 선수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얼리 엔트리(프로 조기 진출)는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주 감독도 프로에 일찍 도전했기에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무엇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선수들이 원한다면 반대는 하지 않는다. 대신 주위 사람들, 학교 관계자들과 충분히 의논했으면 한다”면서 “프로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해마다 잘하는 친구들이 들어온다. 스스로 준비가 됐을 때 도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려대 주희정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 프로 지도자의 꿈

 

프로 무대에 진출하는 꿈을 꾼다. 주 감독은 고려대를 프로팀의 시스템에 맞춰 운영한다. 그는 “감독대행 때부터 지금까지 프로팀처럼 하고 있다. 쉬는 날도 많고 동계 훈련만 진행한다. 각자 준비할 것을 하는 방식”이라면서 “처음에는 선수들이 힘들어 했는데 적응이 많이 됐다. 프로 무대에 맞는 패턴이나 수비를 중심으로 훈련한다. 선수들도 그렇지만 저도 준비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동시에 선수들에게는 자립심을 갖추게 한다.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선수는 경기에 뛸 수 없다. 프로에 가서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실력과 마인드를 가르친다.

 

최근 프로농구에는 주 감독과 비슷한 연령대의 지도자들이 늘고 있다. 언젠간 지휘봉을 잡는 모습을 그린다. 그는 “솔직히 부럽다. 저도 그 자리에 서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알게 모르게 준비도 많이 한다”면서 “지도자는 성적이 말해준다. 대학 무대에서 최근 몇 년간 좋은 성적을 냈다. 안정된 팀을 만드는 것이 좋은 지도자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 감독은 “아직은 한없이 배워야 한다. 이제 걸음마 단계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걸음마 단계를 넘어 뛰어다닐 수 있는 수준까지 빨리 가고 싶다”고 바라봤다.

 

끝으로 주 감독은 “저는 상대 팀보다 한 템포 더 빠른 농구를 하고 싶다. 공격 횟수도 많이 가져가면서 쉴 새 없이 몰아쳐야 한다. 한국 농구가 한동안 침체되다가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팬들을 위한 농구를 하고 싶다. 눈이 즐거워야 팬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정서 기자 adien10@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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