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와 한집에 살았다. 맞벌이로 생계를 책임지던 부모님이 출근하고 나면 외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함께했다. 무한한 사랑으로 자란 손자는 어엿한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그러나 1군에서 활약을 직접 보여드리진 못했다. 외할머니는 지난 6월 18일, 그의 곁을 떠났다. 이 편지는 프로야구 두산 투수 정철원(23)의 못다 한 이야기다.
할머니, 추석이에요.
추석이 되면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송편이 떠올라요. 참 맛있었어요. 제가 좋아한다고 깨송편만 쏙쏙 골라주셨죠. 왜 제가 집으면 다 밤송편, 콩송편이었는지 몰라요. 정말 신기해요.
학창시절 야구부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면 늘 할머니가 저를 맞아주셨어요. 맛있는 밥 냄새가 아직도 생각나요. 특히 찌개를 엄청 잘 끓이셨죠. 할머니 음식 중 제일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할머니가 없어요. 아무리 공을 잘 던지고 와도 할머니가 안 계셔서 많이 속상해요. 야구하느라 곁을 지켜드리지 못해서, 더 많은 추억을 쌓지 못해서 죄송해요.
잠실야구장에서 던지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잘할 자신 있었는데 아쉬워요. 제가 너무 늦었어요. 아마 할머니는 다 이해해주시겠죠. 그래도 마음이 무거워요.
모든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가장 죄송해요. 할머니는 항상 제 옆에 계셨고 저를 사랑해주셨어요. 당연한 일상이라고 여겼던 제가 바보 같아요. 조금 더 이야기도 많이 하고 더 잘해드렸어야 했는데 부족했어요.
이건 저만 아는 비밀인데 저 이번에 루틴 만들었어요. 5월 6일 1군 데뷔전 때부터요. 원래 루틴에 의존할까 봐 일부러 피했는데 지금은 마운드에서 항상 하는 일이 있어요. 마음속으로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들을 한 번씩 부르는 거예요.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도 계속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무사히 야구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할머니가 지켜봐 주셔서요.
1군에서 던지면서 벌써 타구를 세 번이나 맞았어요. 많이 아팠어요. 다행히 맞은 부위가 나쁘지 않아 모두 큰 부상을 피했어요. 할머니가 지켜주신 거죠? 다 할머니 덕분이에요.
저 할머니가 키워주셔서 멋지게 잘 컸어요. 더 자주 말씀드릴 걸 그랬어요. 할머니 사랑해요. 엄마는 제가 잘 챙길게요. 걱정하지 말고 푹 쉬세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많이 보고 싶어요.
사진=정철원, 두산베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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