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이 나오면 일단 사고봅니다.”
이 한마디가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형성하고 있는 ‘신흥 소비 세력’의 소비 성형과 개인의 취향 중심 가치관이 나타난다. 희소성 있는 한정판 제품을 구매해 개인의 심리적 만족감을 충족하면서, 향후 제품의 가치가 높아지면 재판매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리셀테크(재판매를 의미하는 Resell과 재테크의 합성어)’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패션, 식품 등의 유통업계뿐만 아니라 전자, 자동차, 금융 그리고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NFT(대체불가토큰) 시장까지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최근 소비재 기업에 따르면 출시를 앞두고 있는 제품에 프리미엄을 붙여 한정 수량만 판매하는 ‘헝거(Hunger)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시장 흐름을 설명했다. 한정판 마케팅이라고 불리는 헝거 마케팅은 한정된 물량만을 판매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더욱 자극하고, 잠재고객을 배고픔 상태로 만드는 마케팅 기법이다. 기업은 한정적인 공급에 수요가 공급 수량보다 상회하면 그만큼 제품 가치가 높아지고, 이를 통해 제품 및 브랜드 인지도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와 더불어 그만큼 소비자의 구매 심리도 자극할 수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정판 제품’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 참여자의 66%가 ‘한정판 제품을 구매해 본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다. 또한 50.8%의 응답자가 ‘한정판 제품이라면 왠지 더 관심이 간다’고 답했고, 47%가 한정판 제품을 구매했을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측은 “기본적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정판’ 제품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았으며, 보통은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에 부합할 때 한정판 제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한정판은 구매자의 만족도에 그치지 않고, ‘리셀테크’로 확장한다. 리셀은 명품이나 한정판 아이템을 재판매하는 MZ세대의 새로운 거래 트렌드로 떠올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정판 리셀은 ‘가치’와 ‘소유’ 그리고 ‘니즈’가 모두 결합한 형태”라고 설명하며 “이 시장이 급속도로 확장하면서 최근에는 매우 매력적인 현물 투자 시장으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는 한정판 제품과 연결해 ‘리셀 시장’에 대한 조사도 함께 진행했다. 그 결과 최근 리셀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배경이 한정판 제품의 수요 증가(41%)보다는 ‘재테크 수단으로의 인기’(52.3%)에 있다고 생각했다.
▲스니커즈 '수익률 1000%'
유통업계는 말 그대로 ‘한정판 난리’라고 표현할 정도로 열풍이 불고 있다. 시작은 나이키 스니커즈다. 지난해 8월 나이키는 ‘나이키 에어 조던 1 트래비스 스캇 프라그먼트’ 한정판을 18만원대에 출시했다. 현재 스니커즈는 리셀(재판매) 플랫폼에서 200만원이 넘는다. 스니커즈 구매에 성공한 사람은 최대 1000%에 달하는 수익률을 거둔 셈이다.
실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 스니커즈 사진을 게시하며 “신어야돼 말아야 돼ㅠㅠ 열라 고민 중”이라고 써 시선을 모았다. 단순히 한정판 제품 구매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이 시기에 이마트는 리셀마켓 ‘솔드아웃’과 함께 한정판 스니커즈를 내건 이벤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 솔드아웃 행사 상품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36%, 결제 건수는 행사 직전 대비 200%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는 지난해 12월에도 이 이벤트를 확장, 식품업체 팔도와 손잡고 한정판 ‘솔드아웃 왕뚜껑’ 이벤트를 진행했고, 경품으로 한정판 스니커즈를 내걸어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오픈런’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오픈런이란 매장 문을 열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을 미하는 것으로,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줄을 서는 광경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샤테크(샤넬 제테크), 포테크(포켓몬빵 재테크)라는 말이 속속 나오면서 한정판 열풍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정판 휴대폰에 자동차, 심지어 부동산까지 한정판 러시
삼성전자는 지난달 25일 ‘갤럭시 Z 플립3 포켓몬 에디션’을 한정 출시했다. 이 패키지 상품에는 갤럭시 Z 플립3 단말기, 클리어 커버와 함께 피카츄 키링 포켓몬 팔레트, 포켓몬 도감 디자인의 가죽 파우치, 몬스터볼 3D 그립톡, 인기 포켓몬 스티커 5종 등 포켓몬 액세서리가 들어 있다. 이 에디션 가격은 128만400원이었는데, 판매 시작 5분 만에 준비된 물량을 모두 소진했다. 삼성전자는 이전에도 명품 브랜드 톰브라운, 메종키츠네 에디션 한정판을 선보였는데, 삼성닷컴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열기를 선보이며 모두 완판됐다.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BMW코리아는 지난 2019년 12월부터 온라인 판매 플랫폼 ‘숍 온라인’을 통해 한정판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쿠페형 전기차 세단 ‘i4’의 퍼스트 에디션 한정판 차량을 출시했고, 동시에 곧바로 매진됐다, 올 1월에는 뉴욕의 라이프스타일브랜드 키스(KITH)와 협업해 선보인 1억4000만원대 상품 ‘M4 컴페티션xKITH’ 한정판 4대 판매에 2만4000여명이 몰리기도 했다.
금융권에도 한정판 상품이 나오고 있다. 롯데카드가 가장 적극적이다. 롯데카드는 지난해 12월 카카오뱅크와 손잡고 ‘춘식이’ 콘텐츠를 활용한 한정판 ‘카카오뱅크 롯데카드’를 선보였다. 앞서 명품 브랜드 몽블랑과 전략적 업무 제휴를 맺고 한정판 카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하나카드 역시 지난 2020년 11월 하이트진로와 함께 ‘뉴트로 콜라보 제휴 마케팅’ 일환으로 ‘Any PLUS 신용카드 진로두꺼비 한정판’ 카드를 출시해 완판했고, 지난해 3월 앵콜 출시하기도 했다.
한정판 열풍은 부동산업계까지 번졌다. 희소성 높은 핵심 입지에 차별화된 상품성을 갖춘 주거상품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한정판 부동산은 펫네임(브랜드 명칭)에 단지명이나 특정 번지수를 결합한다. 미켈란 147, 효성빌라 청담101, 나인원한남 등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이미 미국 뉴욕 맨해튼을 중심으로 ONE57, 35 Hudson Yard, 520 W 28 by ZAHA HADID 등과 같이 번지수와 펫네임을 활용해 희소성을 부여해 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선보인 바 있다”라며 “이 같은 흐름이 최근 한정판 열풍과 맞물려 서울 최고급 주거단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NFT로 번진 한정판 열풍
‘대체불가토큰(Non Fungible Token·NFT)’는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을 대표하는 토큰을 뜻하는 것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서 디지털 자산의 소유주를 증명하는 가상의 토큰(token)이다. 그림·영상 등의 디지털 파일을 가리키는 주소를 토큰 안에 담아 고유한 원본성 및 소유권을 나타내기 때문에 사실상 디지털 한정판인 셈이다.
비트코인 등 블록체인이 활성화되고, 여기에 한정판 열품이 결합하면서 NFT 역시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애초 미술작품 중심의 NFT 시장은 사실상 모든 기업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우선 현대자동차는 지난 4월 NFT 시장 진입을 선포하며 NFT 전용 글로벌 커뮤니티를 구축했다. 이와 함께 4월20일 판매된 ‘현대X메타콩즈 콜라보레이션 NFT’는 뜨거운 관심속에 매진됐다. 지난 2일에는 현대차 NFT 공식 웹사이트를 론칭했고, 이더리움 기반 공식 NFT 1만개를 오는 9일과 10일 이틀 간에 걸쳐 판매한다.
통신사 KT는 국내 최초로 호텔에 접목한 NFT 아트 갤러리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안다즈 서울 강남에서 오는 15일까지 한 달간 NFT 디지털 아트로 구성된 ‘Enter X: 몽환경(夢幻境)’ 전시를 진행한다. 전시 관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구매도 가능하다.
에버랜드 역시 튤립축제 30주년을 맞아 지난달 카카오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의 NFT 유통서비스 '클립드롭스'에서 튤립 NFT 11종 330개를 발행했다. 5일간 하루 60~90개씩 순차 판매했는데, 매일 평균 15초만에 완판됐다.
도서 ‘트렌드 코리아 2022’(김난도 외 11명 저)에 따르면 “득템력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단지 구하기 어려운 한정상품이 늘었다는 사실을 넘어, 상품의 희소성 개념이 바뀌는 새로운 시장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정된 수요로 가치를 높이는 한정판은 자금력이 아닌 득템력(온라인 게임에서 ‘아이템을 얻다’의 의미로 쓰였고, 이에 좋은 물건을 얻었다는 뜻으로 쓰는 신조어)이 경쟁력이 됐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한정판 제품이나 NFT의 경우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소유했다는 심리적인 만족감,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는 순기능이 있다”면서도 “다만 리셀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시장 교란 문제, 정보 비대칭성, 소비자 보호 문제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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