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기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으로 꼽히는 게 바로 ‘치매’다. 서서히 옅어지는 기억에 자신과 가족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고, 비탄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20여년간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72세에 접어든 호주 여성 크리스틴 브라이든은 1995년 46세에 치매로 진단받은 뒤 치매를 동반자로 인정했다. 그는 아이큐150의 높은 지능을 갖고 있었고, 치매로 진단받은 당시 호주 과학기술부 제1차관보였다.
크리스틴은 치매로 진단받은 이후에도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며 치매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는 현재도 ‘치매환자도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희망을 주고 있다.
실제로 치매는 조기에 발견해 관리하면 극단적인 증상의 발현을 늦출 수 있다. 단, 조기관리의 시작은 환자와 가족이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박기정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로부터 치매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들어봤다.
-‘치매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은 환자는 물론, 가족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치매를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조기진단이 지연될 수 있고, 치료 과정에서도 환자나 가족들이 협조적이지 않을 경우 진척이 어렵다. 이는 과거 암이 불치병으로 인식되던 시기에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나 가족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모습과 유사한 것 같다.
치매로 진단받은 뒤 대다수 환자의 첫 반응은 부정하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후 점차 현실로 인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치매는 조기에 적극 관리하면 인지저하를 늦출 수 있다. 치매증상을 부정하기보다 조기치료로 인지저하를 늦출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한 질환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조기치료를 받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예후 차이는 얼마나 큰지 궁금하다.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할 뿐, 치료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전체 치매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조기에 관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알츠하이머는 뇌에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쌓여 발생한다. 단백질이 쌓이는 과정이 10여년, 이후 ‘기억력이 깜빡이는’ 경도인지저하의 상태를 수년간 거친 뒤 치매 단계로 접어든다.
따라서 경도인지장애에서 치료를 시작해 치매로의 진행을 막는 게 중요하다. 이 시기에는 기억력·인지기능 저하가 동반되지만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다. 초기에는 인지기능장애를 완화하고 치매 진행을 막는 약물치료를 고려하게 된다. 뇌신경 손상으로 인한 아세틸콜린 감소를 막거나, 뇌신경세포의 흥분성 손상과 연관된 NMDA 수용체를 억제하는 약제 등을 활용한다.
실제로 최근 치매 위험군에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식습관, 신체활동, 인지훈련을 2년간 적극적으로 관리했을 때 전반적인 인지기능에서 비교군에 비하여 우수한 수준을 보인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치매 위험군에 속하는 경우,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종합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지저하 예방을 위한 노력을 했을 때 긍정적이라는 의미다.
경희대 신경과에서도 ‘치매는 예방을 위한 노력이 중요한 질환’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기발견과 적극적인 관리를 통한 인지저하 관리에 중점을 두고 진료에 나서고 있다.”
-치매 환자의 가족들은 현실적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보고 있음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중환자를 오랜 기간 간병해본 경험이 있다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특히 치매는 상당히 유병기간이 길어 이같은 어려움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국내서는 향후 치매환자 관리에 국가나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구 고령화로 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최근 가족형태가 핵가족·단독가족으로 변하며 가정에서 환자를 온전히 돌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경증 치매 환자는 자립할 수 있는 여건과 사회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환자를 가장 잘 이해하고 정서적인 안정과 긍정적인 감정의 교감은 가족만이 제공해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긴 유병기간 동안 환자 관리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결국 가족과 지역사회의 지혜로운 조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치매환자와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조언이 있다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환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 예컨대 ‘치매 조짐이 보이는 부모님을 무조건 모셔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환자에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시골에 오랜 기간 거주하고 살아온 부모님이 걱정돼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자신이 사는 곳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익숙한 환경에서 어느 정도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해 오던 부모님은 낯선 환경에서 오히려 더 퇴행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무조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보다, 부모님이 편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지내도록 하되 자녀들이 자주 방문하고 연락하며 관심을 갖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한국인들은 아픈 부모님을 무조건 옆에서 모시고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환자 개인별 특성이 다양한 만큼, 주치의와 충분히 상담해 상황에 맞는 대처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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