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의 뜨거운 열기에는 남녀노소 구별이 없었다. 몸의 상처, 마음의 아픔까지 치유해 주는 것이 짜릿한 역전승의 묘미가 살아있는 야구였다. 두산과 삼성의 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린 19일 대구구장. 3루쪽 삼성 응원석 통로에 흰 색 정장을 빼입은 한 노신사가 잠시도 앉지 않고 시종일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삼성을 응원했다. 박석민이 3회말 선제 2타점 2루타를 쳤을 때도, 최형우가 6회말 쐐기 3점 홈런을 쳤을 때도 20대 젊은이들에게 뒤질세라 온 몸으로 춤사위를 펼쳤다.
대구시 수성구에서 온 김수용(68)씨. 김 씨는 복장부터 튀었다. 새하얀 정장 속에 녹색 셔츠를 받쳐 입었고 머리에는 검은 중절모를, 발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백구두를 착용했다.
누가봐도 멋쟁이 노신사의 모습이었지만 김 씨는 올해 초까지 신경안정제에 의존하던 우울증 환자였다고 했다. 야구장은 커녕 바깥 외출도 거의 못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1960년대 말 맹호부대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와 허리에 중상을 입고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전쟁 및 외상 후유증으로 사회 적응에 실패했다”고 했다. 특히 최근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고 기력이 쇠해 지면서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고.
그러나 우연히 방문한 야구장의 열기가 김 씨에게 새 삶의 활력을 가져다 줬다. 아무 생각없이 야구장에 들렀다가 삼성의 짜릿한 역전승을 보고 야구의 매력에 쏙 빠졌다는 것. 야구장을 찾아 사람들의 응원 열기 속에 동참하면서 우울증도 사라지고 신경안정제도 끊게 됐다고 한다.
김 씨는 “이 야구가 사람을 미치게 하더구만. 이기면 이겨서 좋고 져도 내일 또 이길 기회가 있고. 삼성도 포스트시즌에 못 올 것 같더니만 마지막에 힘을 내서 올라왔잖아”라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토해냈다.
활력과 자신감이 생기면서 김 씨의 외모에도 변화가 생겼다. 웬만한 젊은이들도 입기 부담스러워 하는 백바지, 백구두 패션은 이제 트레이드 마크가 돼 버렸다. 이날도 백색 정장으로 지인의 아들 결혼식에 갔다가 야구를 보기 위해 일찍 빠져 나왔다는 김 씨는 “삼성이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다. 어제까지 그렇게 못하던 최형우가 오늘 홈런을 칠 수 있는 것을 봤으면 됐다”며 껄껄 웃었다.
김동환 기자 hwany@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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