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아들 낳으면 운동선수 시킬까?”
운동선수 출신 부부의 작은 소망을 이뤄줄 아이가 뱀띠의 해인 2001년 4월17일 태어났다. 부부 모두 한국 소프트테니스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라 누구의 피를 물려받아도 운동선수가 될 수 있는 신체 조건, 운동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아기는 부부의 소망대로 운동선수로 성장해, 12간지가 두 번 돈 2025년 ‘별들의 축제’라 불리는 프로농구 KBL 올스타전에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선수로 출전한다. 인기와 실력을 모두 갖춘 떠오르는 별, 프로농구 LG 2년 차 유기상의 이야기다.
유기상은 NH농협은행 소프트테니스 유영동 감독과 소프트테니스 국가대표 출신 박영아 씨의 차남이다. 부부는 소프트테니스 레전드이자 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유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만 금메달 5개를 따낸 스타다. 박영아 씨 또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선수였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이어받았다. 유기상은 2023 신인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LG의 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데뷔 시즌부터 날았다. 데뷔 시즌 신인 최다 3점슛 신기록(95개)을 쓰면서 생애 한 번뿐인 신인상의 주인공이 됐다. 2년 차엔 프로농구 최고 스타로 등극했다. 2024~2025 KCC 프로농구 올스타 팬 투표와 선수단 투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별로 떠올랐다.
◆농구 vs 개인 종목
“아들∼ 너는 지치지도 않냐.”
‘강철 체력’ 그 자체였다. 피는 속일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유기상은 에너지가 넘쳐 온종일 뛰어놀아야 겨우 잠이 드는 개구쟁이 꼬마였다. 아버지 유 감독은 아들의 손을 잡고 테니스 코트로 향했다. 곧잘 따라 했다. 수영도 배웠다. 운동능력은 확실히 있는 듯했다. 선택의 기로의 놓인 순간, 유기상의 시선이 닿은 곳은 다름 아닌 농구였다.
처음부터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유 감독은 “테니스 수업이 끝나고 코트를 정리하는데, 농구 슛 자세로 테니스공을 던져 카트에 넣는 모습을 봤다”며 “농구를 시키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껄껄 웃었다.
이어 “활동량이 워낙 많은 아이였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무릎이 까져 피가 나도, 더 놀고 싶어서 괜찮은 척하며 뛰어다녔다”며 “개인 종목인 테니스와 수영을 시켜봤는데, 다 잘했다. 근데 9살이 혼자 알람 맞춰놓고 새벽에 일어나 미국프로농구(NBA)를 보더라. 농구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유기상은 “엄마가 학습지 같은 거 하라고 하면 엉덩이에 불날 것 같다고 못 하겠다고 했다. 뛰어노는 걸 좋아했다. NBA를 접하면서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집 앞에 있는 농구 교실에 갔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힘들다’, ‘포기하겠다’고 말하면 얄짤 없이 선수 생활을 그만두겠다는 약속이었다. 선택에 책임을 지고 끈기 있게 운동하는 선수로 성장하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약속을 지켰다. 갖은 어려움이 밀려와도 이겨냈다. 유기상은 “이제껏 부모님께 ‘농구를 그만두고 싶다’나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마냥 농구가 좋았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너무 기특하다. 엄마 닮아서 노력파고 성실하다”고 미소 지었다.
◆나무 같은 아빠, 보물 같은 아들
본격적인 시작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유기상은 서울 용산구에 있는 삼광초로 전학을 갔다. 그때부터 유 감독은 더 바빠졌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줬다. 무려 9년 동안 용산행 등교를 함께했다. 자택이 같은 서울인 은평구였지만, 출근 시간에 겹쳐 차가 막히는 날이면 2시간 넘게 운전해야 했다. 그러나 유 감독에겐 ‘귀한 자산’으로 남은 시간이었다.
그는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피곤했던 순간도 있었으나, 그 시간이 있었기에 기상이가 마주한 어려움에 대해 알 수 있었고 기상이도 아빠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마음이 많이 통했던 것 같다. 덕분에 지금도 부자간의 대화가 많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유기상에게도 소중한 기억이자, 감사한 추억이다. 그는 “정말 감사하다. 아빠랑 함께 등교하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가 지도자이시니 인성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하셨던 기억이 있다. 당시엔 ‘했던 말을 계속하시네’ 싶었는데, 지금까지 선수 생활하는 것에 있어서 그런 조언이 피가 되고 살이 됐다”고 힘줘 말했다.
지도자가 좋아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실제로 한 농구계 관계자는 유기상에 대해 “성실하고, 인성이 좋으니 지도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잔소리 같기도 한 조언은 프로에 진출한 뒤에도 이어졌다. 유기상은 “지금은 아빠가 얘기하면 안 들으려고 한다. 혼자 창원에 떨어져 있다 보니 더 걱정하시는 것 같다. 이젠 내가 ‘괜찮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얘기한다. 마음 놓고 편안하게 농구를 보셨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미소 지었다. 유 감독은 “아들 걱정이 안 될 수가 있겠나. 직접 지도자를 하다 보니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승승장구 중인 유家네
경사가 계속된다. 2023년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신인 드래프트서 유기상은 떨리는 마음을 숨긴 채 호명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상현 LG 감독이 3번째로 무대에 올라 “연세대학교. 유기상”을 외쳤다. 축하의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유기상은 LG 유니폼을 입고 반짝이는 합격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했다. 유 감독은 당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 여자 대표팀 감독을 맡아 선수촌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몰래 힐끔힐끔 휴대전화를 꺼내 결과를 확인했다는 것이 유 감독의 설명이다.
아버지도 보답했다. 유 감독은 여자 단식에 출전한 소속팀 선수 문혜경의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그는 “드래프트 현장에서 축하해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면서도 “큰 대회를 앞뒀기에 갈 수 없었다. 선수 지도에 공을 들인 만큼 문혜경 선수의 값진 금메달을 볼 수 있었다”며 웃었다.
끝이 아니다. 유기상은 데뷔 시즌 신인답지 않은 안정적인 경기력을 자랑했다. 일찌감치 컵대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LG의 2023~2024시즌 두 번째 경기부터 코트를 밟았다. 출전 시간을 서서히 늘려갔다. 54경기 중 52경기나 소화했으며 평균 8.1점 3점슛 성공률 42.4%를 기록했다. 역대 신인 최다 3점슛 기록(95개)도 세웠다. 시즌 초반부터 신인왕 레이스에서 크게 앞선 만큼 신인 드래프트 1순위(KT 문정현), 2순위(현대모비스 박무빈)를 모두 제치고 당당하게 신인상 트로피를 품었다.
유 감독도 질 수 없었다. 성과를 만들어야 했다. 유 감독이 이끄는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0월 열린 전국체전 여자일반부 단체전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8년 이후 6년 만의 정상이다.
그러자 아들은 더 큰 선물을 가져왔다. 올 시즌 올스타전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별로 등극했다. 유 감독은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하하. 믿기지 않았다. 아 우리 기상이가 이 정도는 아직 아닌데”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제 2년 차라 부족한 부분이 있을 텐데도 팬분들이 너무 많은 사랑을 보내주셨다. 최고의 자리라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기상이가 잘 즐기고 슬기롭게 이겨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유기상 본인 역시 예상치 못한 결과에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올스타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1등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첫째 날, 둘째 날 1위이길래 이러다가 곧 떨어지겠거니 했는데, 많은 분이 뽑아주셔서 결국 1위가 됐다”며 “인생에서 한 번도 못해본 선수들이 대부분일 텐데, 2년 차 어린 선수에게 이런 영광을 주셔서 감사하다. 걸맞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코트에서 더 열심히 뛰겠다”고 미소 지었다.
◆태극마크 父子의 꿈
부자에게 남은 꿈이 있다. 바로 부자 AG 메달리스트다. 태극마크 부자는 이미 달성했다. 2023년 유기상이 유니버시아드 대표에 발탁되면서 이뤘다. 당시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어 선수촌에서 생활하던 유 감독은 아들이 입촌하기만을 기다렸다. 변수가 발생했다. 대표팀에 합류는 했으나 발목 부상이 악화돼 하차했다. 유 감독은 “기다렸던 순간이다. 마침 내가 선수촌에 있었다. 그런데 기상이에게 전화가 오더라. 부상으로 빠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정말 아쉬웠다. 기상이랑 선수촌에서 감독과 선수로 만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한 차례 미뤄졌던 유기상의 대표팀 데뷔전은 지난해 7월 열렸다. 평균 24.5세의 젊은 선수들로 꾸려진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과의 A매치 평가전 2차전에서 3점슛 5개 포함 17점을 몰아쳤다. 인정받았다. 지난해 11월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에서 인도네시아와 호주를 상대했다. 유 감독은 “최근 대표팀에 뽑혔을 때 실력을 정말 인정받은 것 같아서 뿌듯했다. 자부심이 컸다. 아내와 나는 그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이 얼마나 큰지를 알기 때문에 정말 기뻐했다”고 했다.
다음 스텝은 AG 메달이다. 유 감독은 이미 5개의 AG 메달을 품었다. 마냥 꿈은 아니다. 남자 농구는 1970년, 1982년, 2002년, 2014년에 AG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한국 농구의 국제경쟁력이 하락하곤 있으나, 도전해볼 만하다.
◆뱀띠 기운을 모두에게
2025년 푸른 뱀의 해가 시작됐다. 2001년생 뱀띠 유기상은 자신의 기운을 모두에게 나눠주겠다는 마음이다. 그는 “2024년은 정말 많은 경험을 한 해다. 팬분들은 어떠셨을지 모르겠다. 좋은 기억도 있고 안 좋은 기억도 있겠지만, 다 잊고 좋았던 기억만 갖고 함께 2025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결심했던 목표를 다 이루는 한 해를 보내셨으면 한다. 농구도 많이 보러와 주시면 좋겠다. 하하. 사인, 사진 열심히 해드리겠다”며 웃었다.
유 감독도 ‘해피뉴이어’를 외쳤다. “기상이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부모로서 정말 감사드린다. 기상이가 운동하는 데 있어 폐 끼치지 않고 더 잘할 수 있게끔 부모로서 역할을 잘하겠다. 소프트테니스도 정말 재밌는 종목이니, 혹시 시간 되시면 관심과 응원 보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로를 향한 덕담도 남겼다. 유기상은 “아들로서는 항상 부모님의 건강이 최고니 술을 좀 줄였으면 한다. 하하. 아빠가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보냈으면 좋겠다. 제 걱정은 덜 하셨으면 좋겠다. 종종 조언을 주실 때면 제가 ‘아빠를 걱정시키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어려움도 잘 이겨내 볼 테니 믿고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아빠가 정말 대단하시다. 내가 부모가 된다면, 우리 부모님처럼 운동선수 자녀를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래도 아들을 낳으면 운동선수를 시키고 싶다. 아빠랑 똑같을 것 같다. 운동을 시작해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도록 책임감을 심어주지 않을까. 농구도 좋고 골프 같은 개인 스포츠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 감독도 웃으며 운을 뗐다. “우리 아들 잘하고 있다. 지금처럼 기본을 잊지 않고, 모두에게 예의를 잘 지켰으면 한다. 네가 농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안다. 오래오래 잘했으면 좋겠다. 몸 다치지 않고 잘하는 게 최고 아닌가. 네가 좋아하는 농구,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했으면 좋겠다. 항상 응원할게”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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