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차 한 잔의 쉼을 즐기려는 시민들,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개성의 골목길을 구경하는 외국인 관광객 등이다. 구옥과 신옥, 나이 지긋한 동네 토박이 어르신과 재잘재잘 수다 떠는 학생 무리까지 북촌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적절하게 섞인 지역이다. 모든 것을 감싸 안는 포용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런 북촌의 장점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영민한 예술 공간이 탄생했다. 지난 9월 개관부터 화제를 모은 ‘푸투라 서울’이다. 첫 전시는 튀르키예 이스탄불 출신의 레픽 아나돌.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다. 아시아 최초 개인전으로 글로벌 미술팬들의 문의가 이어져 2025년 1월10일까지 한달 더 연장 전시를 결정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뉴욕 유엔 본부의 지도자 총회 기간 동안 전시됐던 ‘거대자연모델: 산호 시리즈’를 공수, 압도적인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구다회 대표는 “연장 전시 결정은 전적으로 방문객들의 응원 덕분”이라며 “SNS를 통해 전시 소감과 방문 후기를 보면 힘이 난다. 10명이 전시를 보면 10개의 각기 다른 소감의 나온다. 예술가가 예술을 하고, 저희가 전시를 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문을 열였다.
푸투라 서울은 공간의 효율성보다 작품과 방문객의 동선에 힘을 준 전시장이다. 입구의 낮은 천장, 낮은 조도 덕에 출입문 하나로 바로 뒤 도로와 분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시선을 위로 돌리면 유려한 곡선의 천장이 솟아오르고, 그 뒤로 작은 뜰이 펼쳐져 시선을 사로잡는다.
구 대표는 “여행을 가면 좋은 예술 공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나. 기대없이 방문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기쁨을 받으면 하루가 행복하더라. 저는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이 잠깐이지만 좋은 추억과 경험을 안고 돌아가시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가회동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해 자주 왔던 곳이다. 하지만 건물을 짓기엔 어려운 동네다. 고도제한이 12m라 3층 높이까지만 건물을 올릴 수 있다. 350평이 여기서는 크지만, 임대를 주거나 사옥을 짓기엔 애매하다. 수익을 생각하면 주차장을 만드는 게 제일 좋다고 하더라”며 “저는 이 동네가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라 생각하는데, 주차장으로만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상생과 나눔이라는 키워드 아래 지역 사회 문화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다. 저 뿐만아니라 이 공간에 참여하신 분들 모두 일종의 공명심이 발동했던 것 같다. 가회동의 미래를 보고 예술 공간을 만들었다”라고 개관 비하인드를 전했다.
옥상에 올라가 왼쪽을 바라보면 남산이, 오른쪽으론 한옥촌이 펼쳐진다. 고도제한 덕에 시야도 뻥 뚫렸다. 구 대표의 말처럼 주차장으로 만들긴 너무 아까운 위치다. 구 대표는 “2018년도에 기획하고 완공까지 6년이 걸렸다. 처음부터 생각한 것은 건물이 한옥과 비슷한 모습은 아니었으면 했다”라고 돌아봤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말도 함께다. 구 대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것과 외국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꽤 다르다”며 “해외에서는 우리나라는 꽤 미래적인 도시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문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현대적인 민족이라 평한다. 그래서 고전적이지 않고 도회적인 건물을 기획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전시 첫 주자는 레픽 아나돌이다. 세계 각지 열대 우림의 이미지와 사운드 데이터를 훈련한 AI를 활용해 AI가 상상하는 자연 풍경과 색의 향연을 펼쳐낸다. 뉴욕현대미술관·퐁피두 센터·라스베가스 스피어·아트 바젤·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등 세계 유명 미술관, 예술 축제에 전시됐다.
생각하면 행동한다. 구 대표는 “2019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내가 너의 팬이야’라고 보냈다. 레픽이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할 때다. 소통을 잘 하는 작가다. 당시엔 구글에 자신의 전화번호가 올라와 있기도 했다. 완공이 늦어져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작품을 함께 전시해보자는 뜻을 이루게 됐다. 약속과 의리를 지킨 것”이라고 말했다.
레픽을 첫 아티스트로 정한 이유는 명확했다. 구 대표는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님은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처럼 예술 공간도 미래를 생각하는 공간이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레픽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예술을 한다. 이 부분이 푸투라의 철학과 맞닿아 전시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푸투라 서울이기에 가능한 전시도 있다. 실제 작가들을 만나 리서치를 진행했고, 이를 통해 높은 층고의 ‘100개의 시’(메인 전시장)가 만들어졌다. 구 대표는 “1층부터 3층까지 하나의 공간으로 만든 메인 전시장은 층고가 10.8m정도 된다. 처음 공사를 할 때 모두가 말렸다. 하지만 예술 공간이라면 효율성만 따질 수 없다고 생각했고, 빛이 들어오는 장점을 살렸다. 결과적으로 공간감이 중요한 작품들도 관람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푸투라 서울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예술 공간’이라는 취지에 맞춰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레픽 아나돌 전시의 경우, ‘지구의 밤’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매달 진행하고 있다. 푸투라 서울이 담고자 하는 미래에 대한 다각적 시선을 토크, 뮤직 퍼포먼스, 영화 감상 등으로 풀어낸다. 런던 서펜타인의 예술 감독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김대식 교수, 송길영 작가 그리고 레픽 아나돌이 직접 나선 토크 프로그램, 푸투라 데이 등 총 여섯 차례에 걸쳐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가수 겸 배우 아이유의 ‘밤편지’ 작곡가로 알려진 뮤지션 제휘,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인 소리꾼 이희문과 작품에 대한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가요계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푸투라 서울은 지금까지 한국에 없던 모델이다. 모든 행보가 새롭다. 논어에 등장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떠오른다. 모두와 조화롭게 어울리지만, 소신은 잃지 않는다. 푸투라 서울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구 대표는 “이름은 라틴어 ‘Futura(미래)’에서 착안했다. 과거 사대부들의 생활 공간이었던 북촌의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적 예술적 경험을 제시하는 전시 공간이라는 뜻을 담았다”며 “앞으로 만나보실 세 번째 작가까지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전시를 여는 분들을 모셨다. 앞으로도 좋은 전시로 미술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 미래와 현재를 잇는 푸투라 서울의 발자국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2025년 계획을 전했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사진=푸투라 서울(FUTURA SEOU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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