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권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 그곳을 뚫기 위한 혈투가 시작된다.
3라운드 출발선을 넘어선 지금, 남자프로배구 순위표에는 자타공인 강팀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이 우뚝 솟아 ‘2강’ 라인을 형성했다. 바로 그 구도를 깨뜨리고 싶은, 혹은 최소한 ‘3강’을 구축하고 싶은 중위권의 도전이 거세다. 반환점을 향해 가는 남자부의 색다른 관전포인트다.
3위를 놓고 벌어진 주도권 전쟁에 우리카드, 삼성화재, 한국전력이 얽히고설킨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세 팀은 시즌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외인 이슈’를 공유하는 중이다.
삼성화재가 시즌 전부터 난항을 겪었다. 트라이아웃으로 선발했던 마테이 콕(슬로베니아)이 무릎 문제로 이탈하면서 조급한 교체를 단행했다. 우리카드는 파격적으로 주장 완장까지 맡겼던 미시엘 아히(네덜란드)가 2라운드 직전 발목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고, 한국전력도 구단 첫 개막 5연승을 만끽하게 해준 ‘쿠바 신성’ 엘리안 에스트라다를 무릎 부상으로 완전히 잃었다. 이 공백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내놓는지가 핵심이었던 세 팀이다.
우리카드가 일단 미소를 짓는다. 아히의 대체 외인으로 영입한 두산 니콜리치가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 7일 대전 삼성화재전에서 데뷔해 25점을 쓸어 담았다. 3위가 걸린 중요한 맞대결에서 승리를 견인하며 새 활력소로 거듭났다. 동료와의 호흡과 리그 적응까지 이뤄진다면 더 나은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 있다.
삼성화재는 고민이 많다. 마테이 대신 에이스가 되길 바랐던 블라니미르 그로즈다노프의 기복이 크다. 김상우 삼성화재 감독은 “자신감이나 선수로서의 투지가 꺾여있는 듯하다”며 공개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시아쿼터 알리 파즐리(이란)의 리그 득점 2위(252점) 맹활약으로 버티고 있지만, 공격 밸런스를 위해 그로즈다노프의 부활이 절실하다. 김 감독은 “파즐리의 반대쪽에서 득점이 나와줘야 한다”며 외인의 책임감 있는 반등을 촉구하는 중이다.
한국전력은 가장 고심이 깊었다. 엘리안 부상 이후 내리 5연패를 당하며 극과 극을 경험했다. 재빨리 대체 외인 물색에 나섰지만, 녹록지 않았다. 김철수 한국전력 단장은 “타 리그도 이제 시작을 알리는 단계라 선수들을 잘 안 풀어주려고 한다. 아무나 데려올 수도 없지 않나”라며 깊은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고 끝에 나이지리아의 오포라 이츠추쿠를 영입했으나, 메디컬 체크에서 어깨 부상이 확인되면서 계약이 불발됐다. 더 깊어진 시름, 그 끝에 드디어 주인공을 찾았다. 2019~2020시즌 KB손해보험의 대체 외인 선수로 한국 무대 눈도장을 찍어 삼성화재에서도 뛰었던 마테우스 크라우척(브라질)이다. 메디컬 테스트를 정상 통과한 후, 공식 등록 절차를 밟아 13일 OK저축은행전 출격을 목표로 하고 있다.
듬직한 ‘효자 외인’ 안드레스 비예나(스페인)의 뒤로 상무 제대를 알린 핵심 멤버들이 돌아오며 반등을 꿈꾸는 KB손해보험도 중위권 싸움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상황이다. 외인 에이스들의 어깨에 달린 무거운 책임감, 그 속에 상위권 반등의 열쇠가 걸렸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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