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危機)’라는 두 글자는 꽤 묘하다.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한꺼번에 엿보인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위기를 감지하는 순간 더 큰 집중력과 창의력을 발휘한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그저 힘내라는, 공허한 주문만은 아닌 셈이다.
한국 체육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한체육회장, 대한축구협회장 등 굵직한 인사들이 나란히 도마 위에 올랐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직원 채용 비리, 금품 수수 등의 비위 혐의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로부터 직무 정지를 당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역시 불투명한 협회 운영과 절차를 무시한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 등으로 문체부로부터 ‘자격 정지 이상의 중징계’로 요구받았다. 국정감사를 포함한 곳곳에서 이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보란 듯이 자신의 길을 고수한다. 이 회장은 체육회장 3선, 정 회장은 축구협회장 4선 도전 의지를 내비쳤다. 손안에 쥔 권력과 이익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체육회장은 연간 4400억 원의 예산을 주무른다. 축구협회 역시 연간 예산이 1900억 원에 달한다. 심지어 이 회장의 경우 2019년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대표 자격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각종 특혜를 누리는 중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을 막아설 이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3일까지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각각 8명, 3명의 후보자가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기존 인물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본적으로 선거 자체가 현 수장에게 유리한 시스템이다. 오랜 기간 차곡차곡 쌓아온 표심을 무시할 수 없다. 단순히 새로운 얼굴이라는 점만으로는 두꺼운 벽을 무너뜨리기 어렵다. 본격적인 후보 등록을 채 마치기도 전부터 ‘단일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더욱이 정공법보다는, 자극적 이슈몰이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스포츠 발전을 위한 비전과 정책 제안이 시급한 시점이지만, 상대를 깎아내리는 비방과 비난이 먼저 인사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를 향한 부정적 메시지가 난무한다. 오직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명제만이 필승법인 듯 멈추지 않는다. 가뜩이나 체육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 보다 디테일한 공약을 기대했던 이들은 실망과 피로를 호소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두 수장의 일탈로 그 어느 때보다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언론 보도 역시 한층 날카로워졌다. 지금이야말로 후보자들의 면면을 낱낱이 해부해볼 차례다. 이번 선거의 본질은 비정상 쪽으로 기운 한국 스포츠계를 얼마나 정상화 시킬 수 있느냐다. 정책과 비전을 들여다보는 것은 기본이다. 체육계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 체제를 도입할 수 있는 것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요구해야 한다.
수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체육회와 축구협회의 수장을 뽑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체육의 미래를 향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될 수 있다. 좀 더 면밀하게 돋보기를 들이대야 한다.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가선 안 된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거쳤을 때, 비로소 우리가 바라는 스포츠 리더를 마주할 수 있다. 2025년 1월, 훗날 한국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물꼬가 트이길 바란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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