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을 기약할 힘은 얻었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서 차가운 현실을 확인했다. ‘숙적’ 일본 상대로 승리한 기억도 어느덧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5년 프리미어12 초대 대회 당시 4강전(4-3) 승리가 마지막이다. 사회인 선수가 일본 대표로 참여하는 아시안게임(2018, 2023년)에서 이기긴 했지만, 순수 프로 맞대결로 보면 9연패째를 기록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건 대만의 성장세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한국은 대만 상대로 총 43경기 26승17패를 기록 중이다. 국제무대에서 늘 한 수 아래로 평가했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B조 첫 경기에서 맞붙어 3-6으로 완패한 게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5경기 전적만 봐도 2승3패 열세다. 한 번의 이변으로 치부할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메이저리그(MLB)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벡스 산하 마이너 유망주 린위민은 지난해부터 3차례나 맞붙어 15⅔이닝 4실점 호투로 번번이 대표팀의 앞을 가로막았다.
세대교체를 전면에 내건 류중일호, 국제무대 출항도 벌써 3번째다. 지난해만 해도 항저우 아시안게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을 통해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면서 새 판 짜기에 온 힘을 쏟았다. 다만, 이번 프리미어12만큼은 잇따른 부진에 허덕이며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세계의 벽을 뛰어넘기는커녕 어쩌면 뒤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결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투·타에 걸쳐 차세대 간판스타를 한 명씩 수확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먼저 내야수 김도영(KIA)은 이번 대회를 통해 전 세계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특히 쿠바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4타수 3안타 2홈런 5타점 맹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이때 MLB네트워크의 존 모로시 기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김도영의 영상을 공유한 뒤 “오늘 밤, 김도영은 글로벌 야구스타로 거듭났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선발진 붕괴로 골머리를 앓은 마운드는 특급 마무리 박영현(KT)이 빛났다. 시속 150㎞를 넘나드는 묵직한 직구를 앞세워 타자들을 돌려세우는 모습에서 ‘돌부처’의 향기가 느껴졌을 정도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내로라하는 필승조 사이에서도 대표팀 마무리를 맡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6점 차 열세를 뒤집고 9-6 역전승을 거둔 도미니카공화국전에도 그 위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대표팀의 사정을 고려해 8회초부터 등판해 아웃카운트 5개를 책임진 가운데 실점 없이 경기를 그대로 매조졌다.
잇따른 충격 속에도 두 기둥의 압도적인 경기력은 희망찬 대목이다. 2003년생으로 나이도 젊다.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위해서는 이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향후 두 선수가 앞다퉈 이끌어 갈 대표팀을 향해 이목이 쏠리는 까닭이다. 또한 한국 야구가 작금의 쓰라린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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