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인생에서 꿈꾼 순간, 드디어 찾아왔다.
프로야구 KIA의 우완 투수 김도현의 커리어는 굴곡졌다. 2019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 33순위로 한화 유니폼을 입고 당차게 프로에 입성했지만, 마음처럼 풀리지 않았다. 트레이드, 현역 군 입대 등의 큼지막한 변화들이 계속돼야 했던 이유다.
그랬던 그가 올해 KIA 마운드의 ‘우량주’로 떠올랐다. 이의리, 윤영철 등 젊은 좌완들이 부상으로 이탈한 자리에 황동하와 함께 깜짝 등장해 전력 누수를 최소화 했다. KIA가 선두 자리를 지킨 핵심 동력이다. 이범호 KIA 감독이 지난달 정규시즌 1위를 확정한 후 “황동하, 김도현을 선발로 고정시킨 게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며 “두 선수의 활약이 큰 도움이 됐다”고 직접 고마움을 드러냈을 정도.
조금씩 주가가 치솟았다. 1위가 확정되고 치렀던 지난달 24일 광주 삼성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인생 첫 퀄리티스타트플러스(선발 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빚어낸 장면이 백미였다. 현역 군 복무를 거치며 비약적인 구속 상승을 맛본 그는 150㎞를 손쉽게 넘나드는 패스트볼을 뿌린다. 원래 장점이던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등 다채로운 변화구 구사 능력이 더해지면서 조금씩 잠재력이 폭발한다. 이번 KS 30인 엔트리 진입도 당연한 결과였다.
자신의 첫 가을야구 무대를 최고의 전장, KS로 물들이게 된 김도현은 “긴장감은 많지 않다. 살짝 좀 설레는 기분이다. 양현종 선배님이 다 모여있을 때 ‘하던 대로 우리끼리 즐기자’라고 하셨다. 그 말씀대로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게 웃었다.
시리즈 전, 그의 보직은 확실하지 않았다. 제임스 네일-양현종-에릭 라우어를 잇는 4선발 혹은 불펜 롱릴리프 역할 정도가 거론됐다. 고민 끝에 사령탑이 결단을 내렸다. 23일 서스펜디드 경기를 앞두고 “도현이는 중간도 많이 해봤다. 선발 뒤에 바로 붙이려 한다. 상황이 생기면 많이 쓰려고 한다”며 불펜으로 보직을 못 박았다.
삼성전에 비췄던 좋은 상성 덕분에 활용도가 올라간다. 올해 3경기에 나서 패 없이 1승을 거뒀다. 평균자책점은 ‘0’. 10⅔이닝 동안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스몰샘플이라고는 하지만 피안타율이 0.118에 그친다. 이 감독은 “삼성 상대 구위가 좋고, 자신감도 있는 듯하다”며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솔직히는 선발로 나가면 좋지만, 중간으로도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 어느 자리든, 행복하게 하려는 마음 뿐이다”는 의연한 한마디를 내놓은 김도현은 “(KS 상대가) LG든 삼성이든 상관 없었다. 내 첫 포스트시즌 무대이기도 하고, 내가 잘해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즐기자는 마음이 컸다.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든 야구 선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꿈의 무대, 이곳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뜻깊은 경험이다. 그는 “선수로 이런 무대를 밟을 기회가 많이 없지 않나. 군대 다녀와서 이 자리까지 온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 부담감보다는 행복하게 (투구) 할 것 같다”고 설렘을 감추지 않는다. 목표는 당연히 단 하나다. 그는 “무조건 우승이다. 팀에 보탬이 돼서 반드시 우승하겠다”고 눈을 번뜩이며 필승 의지를 띄워보냈다.
광주=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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