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쾌투였다.
프로야구 KIA는 23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마무리된 삼성과의 2024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PS)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 1차전에서 5-1 승리를 거뒀다. 역대 KS 1차전 승리 팀의 시리즈 우승 확률 72.5%(29/40)라는 기분 숫자를 등에 업은 KIA는 곧장 이어지는 2차전에서 연승에 도전한다.
험난한 과정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당초 21일 시작됐던 이 경기는 광주를 적신 비로 인해 역대 PS 최초로 서스펜디드 경기가 선언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22일 속행됐어야 할 경기지만, 이마저도 폭우 여파로 인한 그라운드 정비 문제로 연기됐다. 남아있던 6~9회를 소화하기까지 2박3일이 소요된 배경이다.
경기가 멈춘 시점은 공교롭게도 6회초 무사 1,2루, 삼성에는 절호의 기회이자 KIA에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당연히 KIA와 삼성이 채울 첫 단추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흐름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는 운명의 장난. 여기서 KIA가 웃었다. 전상현이라는 기둥이 단단하게 버텨준 덕택이었다.
이범호 KIA 감독은 이 위기를 지울 투수를 누구로 세울지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다. 경기 재개를 앞두고도 “작전상 말씀 드릴 수 없다. 보셔야 할 것 같다”며 “가장 좋은 투수를 내보낼 것”이라고 수를 꽁꽁 숨겼다. 그렇게 플레이볼이 선언된 오후 4시, 챔필 마운드에는 전상현이 등장했다.
완벽한 피칭으로 화답했다. 이틀 전 장현식이 던져둔 1볼의 불리한 카운트에서 김영웅을 상대했지만, 초구 143㎞ 패스트볼로 번트 미스를 유도해 3루로 향하는 선행 주자를 지웠다. 적들의 치명적인 번트 실패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이어 타석에 선 거포 박병호를 허를 찌르는 145㎞ 패스트볼로 삼진 처리했다.
윤정빈과의 승부가 다소 어려웠다. 초구 스트라이크 이후 4연속 볼이 나와 2사 만루를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이날의 전상현은 굳건했다. 한방을 노리는 이재현을 상대로 5구 승부 끝에 투수 땅볼로 처리하면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최상의 결과물을 남겼다.
위기를 지우고 포효한 그는 7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유격수 실책으로 선두타자를 내보냈지만 이어진 희생번트와 김헌곤 상대 탈삼진으로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았다. 이후 공을 곽도규에게 넘기며 임무를 마쳤다. 곽도규가 르윈 디아즈를 삼진으로 잡아냈고, 이어 KIA 야수들이 7회말 대거 4득점, 8회말 쐐기 1득점을 뽑아내면서 짜릿한 역전극까지 완성됐다.
전상현의 1⅔이닝 무실점 투구도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생애 첫 KS 무대에서 날아오른 전상현은 곧장 1차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그는 그라운드 인터뷰를 통해 “야구를 하며 KS에서 공을 던진 게 처음이고 서스펜디드 경기 경험이 처음이었는데 정말 즐거웠다. 재밌는 경기였다. 승리해서 기쁘다”며 밝은 미소를 띄워보냈다.
광주=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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