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을 외인, 가을도 문제 없다.
프로야구 LG의 ‘효자 외인’ 오스틴 딘이 폭발했다. 8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의 2024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PS) 준플레이오프(준PO·5전3선승제) 3차전에 3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전해 5타수 3안타(1홈런) 3타점 1득점으로 팀의 6-5 승리를 견인했다.
마운드에서 5⅓이닝 무실점 피칭으로 빛난 손주영이 데일리 최우수선수(MVP)를 가져갔다면, 타석에서는 오스틴이 찬란하게 타오른 경기였다.
5회초였다. 치열한 주도권 다툼 속에서 상대적으로 더 어수선했던 LG가 2-3으로 끌려가던 상황. 찜찜한 흐름을 오스틴이 뒤집어버렸다. KT 웨스 벤자민을 상대로 1사 1,2루 찬스를 받아들었다. 앞선 두 타석 모두 삼진을 당했지만 위축되지 않았다. 흔들리는 벤자민의 초구 시속 141㎞ 커터를 잡아당겨 비거리 130m의 역전 스리런포를 작렬시켰다.
팀을 깨운 한방이다. 분위기를 잡은 LG는 6회초 1점을 추가하며 시종일관 경기를 주도했다. 오스틴은 추가 안타 2개를 얹어 3안타로 날아다녔다. 덕분에 팀도 더없이 중요했던 3차전을 품었다. 5전3선승제 기준 준PO에서 1승1패 후 3차전 승리 팀이 플레이오프(PO)로 향한 확률은 100%다.
오스틴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진다. 홈런 당시를 떠올린 그는 “첫 두 타석에서 사실 공이 잘 보였는데 모두 삼진을 당했다. 특히 두 번째 타석은 더 공이 잘 보여서 무리하다가 역으로 삼진을 먹었다. 3번째에는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집중해서 들어가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웃었다.
무엇보다 ‘LG 킬러’ 벤자민을 격침했다는 사실이 반갑다. 통산 정규시즌 LG전 10경기 5승 2패 평균자책점 1.66(59⅔이닝 11자책점)으로 강했던 투수다. 하지만 오스틴이 발벗고 ‘NO’를 외쳤다. 올 시즌에도 상대 타율 0.364(11타수 4안타)로 좋은 상성을 선보이던 그는, 중요한 가을 길목에서 벤자민을 무너뜨렸다.
지난해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 3차전의 아치도 상기시킨다. 오스틴은 당시 이곳 수원에서 벤자민에게 좌측 폴대를 맞추는 선제 스리런포를 터뜨린 바 있다. 이 홈런을 앞세워 8-7로 웃은 LG는 그대로 진격해 29년 만의 통합우승에 닿았다.
당시가 떠오르지 않았냐는 질문에 오스틴은 “기준을 두자면 KS 홈런이 더 느낌이 있었다. 선취점이기도 했고, 무대가 KS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날 홈런도) 같은 가을야구니까 무게감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사하게 흘러가는 흐름, 하지만 방심할 생각이 없다. 그는 “작년 KS처럼 우리가 위에 있는 상황이 아니다. 매 경기 집중해서 올라가야 할 때고, 미래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무리수를 두다보면 몰락할 수 있다. 한 경기씩 헤쳐 나가겠다”는 듬직한 한마디를 내놨다.
그 과정 끝에 지난해 느낀 KS 열기가 있길 바랄뿐이다. 오스틴은 “작년 가을야구는 정말 추웠다. 올해도 KS에서 그런 날씨가 되면 팀원들끼리 뒤엉켜있고 싶다. 똘똘 뭉쳐서 온기를 느끼는 야구가 정말 감명 깊었다. 그걸 다시 느끼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4 정규시즌 140경기에서 타율 0.319(527타수 168안타) 32홈런 132타점을 남긴 오스틴은 역대 LG 타자의 단일시즌 최다 타점 신기록을 작성한 역사적 외인이다. 그 기운 그대로 가을로 가져와 또 한 번의 역사를 바란다. LG 구단 역사상 준PO를 시작으로 KS에 닿아 우승을 일군 적은 없다. 2002시즌 준PO부터 시작해 KS 진출까지 성공했지만, 삼성의 벽에 가로막혔다. 오스틴과 함께 전에 없던 시나리오를 꿈꾸는 LG다.
수원=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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