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추추트레인’ 추신수(SSG)는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했다. 2024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인 30일 인천 키움전. 경기 전 추신수는 스스로 다짐했다. 흐름이 팽팽하게 진행된다면 자진해서 나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현역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지막 경기일 수 있지만 지금은 팀의 1승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야구장을 찾은 가족들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마음을 선수단이 모를 리 없다. 하나로 똘똘 뭉쳤다. 최정의 홈런 2방을 앞세워 8회 초까지 7-1로 앞서 갔다. 그리고 맞이한 8회 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서 이숭용 SSG 감독이 대타 카드를 꺼내들었다. 추신수였다. 안타는 아니었지만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감독 및 코치진, 선수단은 일렬로 서서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추신수와 진한 포옹을 나눴다. 추신수는 “생각도 못했다. 그 어떤 언지도 없었다. 선수들이 나와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숱하게 섰던 타석. 이날만은 또 다른 느낌이었을 터. 추신수는 “(2020시즌) 미국 메이저리그(MLB) 텍사스에서의 마지막과는 확실히 온도 차이가 있더라. 그땐 (코로나19로) 무관중이었다”고 운을 뗀 뒤 “이런 장면이 그리웠던 것 같다. 기립박수를 받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팬들에게 감사했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다. 텍사스에선 그걸 하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한국에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감독님, 선수들 모두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어느덧 KBO리그에서도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2021시즌을 앞두고 복귀를 알렸다. 추신수는 “한 10년은 뛴 것 같다”고 껄껄 웃었다. 그만큼 코칭스태프, 선수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는 의미다. 최고령 20-20클럽(39세 2개월 22일)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 타자 출장(42세 2개월 17일), 안타·타점(42세 1개월 26일), 도루(42세 27일), 홈런(42세 22일) 등도 갈아치웠다. 추신수는 “실제로 한국에서 뛰니 기사로만 보고 들었던 것보다 훨씬 좋더라”고 끄덕였다.
24년간 프로선수로 활약했다. 아마추어 시절까지 하면 더 많은 시간을 야구장에서 보냈다. 수많은 노력과 땀이 배어있는 곳이다. 추신수는 한국선수로서 새 이정표를 세운 인물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MLB서 보란 듯이 성공했다. 빅리그서 16년 동안 1652경기에 나서 타율 0.275(6076타수 1671안타) 218홈런 782타점 157도루를 기록했다. 경기, 안타, 홈런, 타점, 도루 등 웬만한 코리안 빅리거 최다 기록은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멋진 라스트 댄스를 꿈꾸지 않았을까. 애석하게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긴 세월 달리고 뛰고 굴렀던 몸은 이제 말을 듣지 않았다. 시즌 내내 어깨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추신수는 “한 달 정도 훈련도 못하고 경기에도 못 나갔다. 노력 없이 뭔가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욕심”이라면서 “경험이라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같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하기도 했지만, 선수들이 스스로 정말 잘해줬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은퇴 후 특별한 계획은 아직 없다. 추신수는 “(시즌이 끝나면) 일단 쉬고 싶다”고 말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까닭이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역할에도 좀 더 충실하고자 한다. 이날도 현장엔 아내 하원미 씨와 딸 추소희 양이 있었다.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추신수는 “소희가 냉정한 성격인데”라며 놀라면서도 “나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아이들에게 특히 미안하다. 아들 둘이 학교 가느라 못 온 것이 조금 아쉽다”고 담담하게 전했다.
인천=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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