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월드컵경기장(상암)은 축구 전용경기장이다. 주 목적이 축구 경기의 개최인 만큼 잔디 관리가 필수다. 하지만 각종 콘서트 등 문화행사가 이어지면서 선수들과 축구인의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대관 수익을 감안하면 문화행사를 아예 배제하기도 힘들다. 더욱이 K-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콘서트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이를 감당할 공연장은 부족하다. 애꿏은 아티스트가 질타받는 상황이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잔디 훼손 문제로 불거진 공연장 대관의 현실을 조명했다.
◆‘그라운드석 판매 제외’…서울시, 여론 악화에 특급 조치
서울시는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 보호 위해 특별조치 및 점검 시행’을 지난 14일 발표했다. 잔디 보호를 위해 2025년부터 콘서트 등 문화행사에는 그라운드석 판매를 제외하는 조건으로 대관을 허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국가대표 및 K리그 선수와 감독, 팬들까지 잔디 상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잔디 보호’를 위해 내린 서울시와 시설관리공단 특급 조치다.
시행안을 발표하면서 서울시는 최근 잔디 관리에 대한 비난에 대해 “기록적인 폭염 등 기상 이변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그라운드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현재 잔디밀도가 약 60%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 이에 문화행사 대관 금지까지 검토했으나 K-팝 콘서트 관람에 대한 수요가 커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그라운드석 판매를 제외한 ‘부분 대관’만 허용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추석 연휴 기간 종자파종, 다짐, 디봇정리 등 잔디 회복관리까지 시행하며 다음 달 15일 열리는 국가대표 A매치 경기에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대관은 공단이, 불똥은 아이유?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관리 주체다. K리그, A매치 순으로 일정을 잡지만 대관 비용으로 수익을 올리는 구조로 인해 대관 3순위인 문화 예술 행사를 놓칠 수 없다. 문화행사의 경우 총 수익에서 8%를 시설관리공단이 가져간다. 이를 고려하면 사실 잔디 관리는 공단의 책임이다. 그런데 애꿎은 불똥이 K-팝 가수들에게 튄 모양새다. 축구팬들은 해당 가수를 비난하며 서울시에 “콘서트를 금지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지난 21∼22일은 잔디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관심이 집중됐다. 예정된 ‘2024 아이유 HEREH 월드 투어 콘서트 앙코르 : 더 위닝’이 열린 까닭이다. 콘서트 취소에 대한 축구팬의 청원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어려운 요구였고 서울시는 잔디 관리에 온 신경을 쏟았다. 공연을 마친 23일부터 1차 잔디 교체를 진행했고 29일 FC서울의 K리그 경기 이후에는 2차 잔디 교체에 나선다. 이후에는 코어링, 배토, 부분보식 등 잔디 보수작업 및 회복관리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김영환 서울시 관광체육국장은 “축구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축구팬들과 공연 팬들의 입장을 절충하기 위해 다양한 논의 끝에 내린 결론으로 축구팬과 공연 팬들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K-팝 훨훨 나는데…공연장 없는 현실
공연장의 크기는 인기의 척도가 된다. 관객 동원수가 많을수록 더 큰 규모의 공연장을 대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내 주요 공연장 및 다중이용시설 현황을 보면 수용 인원에 따라 장충체육관(5500명)부터 잠실실내체육관(1만3000명), KSPO돔(1만5000명·구 체조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4만5000명) 등으로 나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대관이 쉽지 않아 그동안 잠실 주경기장이 국내외 톱 가수들의 무대로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해 8월부터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 2026년 완공 예정이다. K-팝 가수들의 성장으로 대규모 관객 동원은 가능해졌지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졌다.
K-팝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국내 공연 인프라는 역행하고 있다. 올 초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와 이상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2024 정책 세미나 ‘대중음악공연산업의 위기, 문제와 해결방법은 없는가?’를 공동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이 위원장은 “대중음악 전용 대형 공연장이 없는 등 공연 인프라 부족은 K-팝의 세계적 위상이 무색한 현실”이라며 “이로 인해 해외 아티스트가 아시아 또는 월드투어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소위 ‘서울 패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국제 시상식 등 대중음악 관련 행사를 국내에 유치하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