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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의 멘탈 퍼포먼스] 여자 축구선수에서 경찰관이 된 이소희

입력 : 2024-08-13 09:00:00 수정 : 2024-08-12 20: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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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소희 본인 제공

2017년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굉장히 추웠고 도로도 꽁꽁 얼어 어디를 갈 수 없는 날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 문의가 왔다. “선생님 저희 딸이 축구를 하는데 그만두려고 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힘듦이 느껴졌다. 당시 필자는 박사과정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시기였다. 원래 대로였다면 상담 요청을 고사하고 다른 선생님을 소개해 드렸을 것이다. 이번 상담만큼은 필자가 맡고 싶었다. 왠지 끌림이 있었다. 이 상담은 여자 축구선수를 맡아 진행한 첫 번째 상담이다.  

 

필자는 자가용을 이용해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으로 향했다. 길이 많이 미끄러웠고 언덕이 많아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상담을 요청한 내담자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필자를 살갑게 맞이해 줬다. 따뜻한 차와 다과를 준비해 주셨고 상담을 진행하는 곳으로 안내해 줬다. 이때부터 힘든 여정이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상우라고 합니다. 이름이 뭐예요?”, “이소희요.” 여자 축구선수 상담은 처음이다 보니 매끄럽게 상담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 선수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한마디로 상담의 물꼬를 텄다. “소희 선수, 저도 축구 선수였어요. 지금 힘든 상황을 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충분히 공감합니다. 저도 축구를 그만두려고 했거든요.” 이 선수는 자신의 속마음을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이 선수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여자 학생 선수였다. 축구를 잘했지만 단체 생활에 불편함을 느꼈다. 이로 인해 축구를 그만두려 했다. “그럼 축구를 그만두고 무엇을 하며 살 거예요?” 필자가 질문을 하자. “바리스타나 네일 아트를 배워서 일을 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필자는 이 선수의 말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축구를 계속하거나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노트에 축구를 할 때 얻는 것과 잃는 것, 축구를 그만두었을 때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직접 쓸 수 있도록 했다. 이 선수는 축구를 그만두었을 때 얻는 것에 대해 내용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잃는 것에만 많은 내용을 작성했다. 이 선수의 머리는 축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사진=이소희 본인 제공

 

“축구를 계속해도 되고 그만둬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엔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해봅시다.” 필자가 첫 상담 종료 시기에 이 선수에게 한 말이다. 이후 필자는 이 선수와 매주 주말 일요일 아침마다 인하대학교에서 상담을 진행했다. 주중에 힘든 훈련과 단체 생활을 하고 나서 필자를 만나는 이 선수는 늘 마음과 생각이 지쳐 있었다. 필자는 이러한 이 선수의 마음과 생각을 회복시키기 위해 상담과 교육을 병행했다. 늘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상태로 팀에 복귀시켰지만, 돌아오는 주말이면 이 선수의 마음과 생각은 또다시 지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선수는 상담 도중에 눈물을 자주 흘렸다. 그때마다 필자는 휴지를 가져다주고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선수와의 상담 과정은 정말 순탄치 않았다. 

 

이 선수와 매주 주말에 만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필자는 이 선수에게 장난을 칠 수 있게 됐고 이 선수는 주중에 있었던 일들을 필자에게 공유해 줄 정도로 가까워졌다. 필자는 이때다 싶어 이 선수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 “지금 축구를 그만두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축구를 그만두면 공부를 통해 대학을 가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아요. 비용도 발생하고요. 만약 축구를 그만두고 싶다면 대학에 가서 그만두는 것을 권장해요. 대학에 가면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어요. 그때까지 제가 버틸 수 있게 도움을 드릴게요.” 당시 이 선수는 축구를 계속할지 아니면 축구를 그만둘지 고민하고 있었지만, 필자의 조언을 듣고 축구를 더 해보는 방향으로 마음을 잡게 된다. 

 

“선생님이 옆에 계셔 주셔서 버틸 수 있었어요. 마음에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고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또 선생님이 선물해 주신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계속 비울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선생님을 많이 믿고 의지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비대면(화상) 미팅에서 이 선수가 필자에게 한 말이다. 이 시기에 이 선수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필자가 교육을 잘해서가 아니다. 이 선수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고 지지해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추가적으로 이 선수가 필자를 믿어 준 부분도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된다. 이 시기에 알게 된 경험적 근거는 내담자가 상담사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클수록 상담의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었다.

 

사진=이소희 본인 제공

 

이 선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전에 있는 대덕대학교로 진학을 하게 된다. 재밌는 것은 이 시기에 필자도 대덕대학교에서 수업을 하게 된 것. 그곳에서 이 선수를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이 선수는 또다시 단체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선수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기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했다.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잘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또 누군가의 간섭을 상당히 싫어했다. 이 선수가 성인이 되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은 더 명확해졌고 결국 축구를 그만두게 된다. 필자도 공부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됐기 때문에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 선수를 더 지지해 줬다. 

 

이 선수는 필자의 대학 강의를 들어야 했기에 매주 만날 수 있었다. 이 시기부터는 이 선수에게 진로 상담을 해줬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가슴 뛰는 일을 찾으라고 했다. 무엇보다 시간을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면, 현재 대학 강의에서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편입에 필요한 것을 지금부터 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선수와의 라포 형성이 잘 돼 있었기 때문에 필자의 말을 신뢰해 줬다. 결국 생활체육과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이 선수는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체육교육과로 편입을 준비했지만 모두 낙방하게 된다. “이 시기에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커리어가 좋고 똑똑한 친구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 선수는 현 상황을 인정했다.  

 

다행히 상명대학교 사회체육학과는 합격을 했다. 이 선수는 상명대학교에 편입해 학업을 이어가게 된다. 문제는 또 발생하게 된다. “편입에 대한 기대가 커서 그런지 학교생활이 너무 재미가 없었어요.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려면 교육대학원에 가야 하는데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가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결국 이 선수는 휴학을 결정했다. 진로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이 선수는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했고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어릴 때부터 축구만 해왔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의 지식수준과 커리어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무엇보다 저는 체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계속 찾았어요.”

 

사진=이소희 본인 제공

 

이 선수는 줄다리기 고민 끝에 경찰관이 되기로 결심한다. 안정적이고 체력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판단한 것.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중학교 때 꿈도 경찰관이었다고 한다. 목표를 경찰관이 되는 것으로 설정한 뒤 이 선수는 집중과 노력을 한 곳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경찰관이 되는데 가산점이 되는 자격증(5개)을 3개월 안에 모두 취득했다. 필기시험을 준비할 땐 하루에 10시간씩 루틴대로 공부를 진행했다. 실기 시험 준비는 그룹 트레이닝을 통해 했다. 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실기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다고 한다. 결국 이 선수는 집중과 노력을 통해 2023년 2차 필기시험에서 합격한다. 1년 만에 얻은 결실이다. 필기시험을 합격한 뒤엔 하루에 3번씩 운동을 하며 실기 시험을 준비해 합격했다.

 

경찰관이 되는 최종 관문인 면접에서도 준수한 점수를 얻었다. 결국 이 선수의 목표였던 경찰관의 꿈을 이루게 된다. 이번 사례는 이 선수가 설정한 목표를 통해 집중과 노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경우다. 선수 출신의 집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유년 시절에 배운 심리기술 전략을 잘 활용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잘 관리했다. “저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제가 제복을 입는 상상을 자주 했어요. 또 ‘내가 아니면 누가 붙냐’ 등의 자기암시를 자주 했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추가적으로 필기시험을 준비할 때 마음과 생각이 흔들리면 컴퓨터 게임을 1시간씩 진행하거나 혼자 코인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며 심기일전을 했다고 한다. 식사 시간에는 보고 싶었던 영상을 봤는데 이 루틴도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 선수는 경찰관이 돼야 하는 목적도 명확했다. 어떻게 보면 목적이 명확했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본다. “처음 축구를 그만두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축구를 못해서 그만둔 거지?’, ‘실패했다’ 등의 인식이 너무 싫었어요. 또 여자 축구선수가 축구를 그만두면 막일을 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러한 편견을 보란 듯이 깨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선수는 “제가 축구를 그만 두었을 때 부모님께서 엄청 힘들어 하셨는데 그 당시에 힘듦을 기쁨으로 바꿔 드리고 싶었어요.” 이 선수가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부모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진=이소희 본인 제공

 

필자는 스포츠 선수가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잘 보내고 다시 그라운드에서 담대하게 싸울 때 무한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함께 마음을 나누던 선수가 좋은 선수에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땐 또 다른 희열을 느끼게 된다. 엄청난 보상을 얻는 것 같다. 이번 이 선수의 사례가 여자 축구선수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길 소망한다. 

 

글=이상우 박사, 정리=이혜진 기자

 

이상우 대표는...

△멘탈 퍼포먼스 대표 △스포츠심리학 박사 △K리그 FC서울, FC안양 선수 △저서 ‘멘탈 퍼포먼스’(2024) △K리그 드림어시스트 멘토(2024) △서울특별시핸드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위원(2024) △양평군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위원(2024) △한국스포츠심리학회 이사(2024) △경주한수원 여자축구단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 △인천유나이티드 U15 광성중, U18 대건고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 △서울 풋볼A U18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 △양평FC 축구단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 △K리그 신인선수 교육(2024) △심판아카데미 A코스 심리기술훈련 특강(2024) △충주상고 U18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 △의정부광동FC U18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 △천안제일고 U18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 △경기 SOL FC U18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 △서울노원RFC U12 심리기술훈련 지원(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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