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넘어 최고로!
박태준은 7일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급 결승에서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바이잔)에 1-0(9-0 13-1)으로 기권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태권도 선수가 올림픽 남자 58㎏급에서 결승에 오른 것은 2012년 런던 대회 이대훈(은메달) 이후 처음이다. 또한, 이 체급에서 사상 첫 금빛 발차기에 성공했다.
◆작전대로
파리올림픽 태권도 종목 첫 주자로 나선 박태준은 순항을 이어갔다. 16강에서 요한드리 그라나도(베네수엘라)를 2-0으로 제압한 그는 8강에서 홈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시리앙 라베(프랑스)를 만났다. 일방적인 응원에 다소 흔들리기도 했던 박태준은 경기 도중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는 등 위기를 맞이했다. 3라운드에 뒤진 상황에서 연이어 몸통 공격을 성공시키며 순식간에 역전에 성공, 4강에 올랐다.
4강 상대는 이 체급 세계 1위 모하메드 칼릴 젠두비(튀니지)였다. 젠두비는 도쿄 대회 이 체급 은메달을 목에 건 실력자다. 그러나 박태준은 이전 경기들보다 더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하며 많은 점수를 쌓았다. “체력은 자신이 있기에 공격적인 작전을 펼쳤다”고 비결을 밝히기도 했다.
운도 따랐다. 반대편 대진에 도쿄 대회 금메달리스트인 비토 델라킬라(이탈리아)가 4강에서 탈락하며 기회를 잡았다. 결승은 박태준의 무대였다. 초반부터 몸통 발차기로 득점을 기록한 박태준은 연이어 몸통 공격에 성공하면서 1라운드를 압도했다. 마고메도프는 경기 도중 부상까지 입으며 어려움을 겪었다. 2라운드에 머리 공격으로 점수차를 벌렸다. 마고메도프의 부상으로 기권하며 마무리됐다.
◆혜성처럼
박태준이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성고 3학년이었던 2년 전부터다. 세계태권도연맹(WT)이 랭킹 71위 이하 선수들을 대상으로 신설한 월드그랑프리 챌린지 대회가 시작이었다. 출전 자격을 갖추지 못했던 박태준은 대한태권도협회의 추천에 따라 주최국 특별 티켓으로 출전했다. 이 대회 58㎏급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 석 자를 알렷다.
이어 아시아선수권 54㎏급에서 단 한 라운드도 잃지 않는 파죽지세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큰 무대에서 더욱 강했다. 2022년 10월 영국 맨체스터 WT 월드그랑프리 시리즈 3차 대회 58㎏급에서 깜작 우승을 빚었다. 월드그랑프리 챌린지 우승으로 얻은 초청 선수 신분으로 내로라하는 랭커들을 잡아내는 이변을 일으켰다. 지난해 6월 아제르바이젠 바쿠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54㎏급 우승을 일궈내 대회 남자부 최우수선수(MVP)까지 손에 넣었다.
방점은 동 체급 국내 최강자 선배 장준과의 대표 선발전이었다. 한 체급에 두 명을 보낼 수 없는 올림픽 태권도 제한 규정으로 인해 마련된 외나무다리 승부였다. 상대전적에서 6전 전패였지만 박태준은 과감한 변칙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우상을 넘어
박태준은 자신의 롤모델로 이대훈을 꼽았다. 아시안게임(AG) 최초 3연패와 올림픽 은·동메달을 목에 건 이대훈을 따라 한성고에 진학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이)대훈이 형이 도쿄에서 풀지 못한 금메달의 한을 풀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이대훈이 이루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의 한을 이뤄냈다. 남자 58㎏급은 유독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2012 런던 대회 이대훈(은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김태훈, 2020 도쿄 대회(2021년 개최) 장준(이상 동메달)이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 체급 결승 진출도 이대훈 이후 박태준이 처음이다. 우상을 넘은 박태준은 새 역사를 썼다.
종주국의 자존심도 살렸다. 한국은 올림픽 태권도에서 통산 12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하지만 태권도의 전력 평준화와 맞물려 점점 우승이 쉽지 않았다. 도쿄 대회에서는 사상 첫 노 골드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박태준은 한국 태권도에 2016 리우 대회(김소희, 오혜리)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안겼다. 남자부로 좁히면 2008 베이징 대회 손태진(68㎏), 차동민(+80㎏) 이후 처음이다. 치열하게 싸워 따낸 금메달로 태권도 종주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혔다.
파리=최정서 기자 adien10@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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