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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Star] 눈시울 붉혔지만…임애지는 이미 우리의 ‘영웅’이다

입력 : 2024-08-05 14:41:50 수정 : 2024-08-05 14: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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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 임애지가 4일 프랑스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결승 튀르키예 하티세 아크바시와의 경기에 입장하고 있다.

 

“아쉽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정말 잘 싸웠다. 경기 내내 예리한 공격을 퍼부으며 흐름을 주도했다. 한 박자 빠른 현란한 풋워크와 원투 스트레이트, 그리고 왼손 잽이 쉴 새 없이 상대를 향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실제로 가까워지고 있다고 여겼다. 심판의 판정을 달랐다. 한국의 임애지(화순군청) 대신, 하티세 아크바시(튀르키예)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결승전이 마무리됐다.

 

사실 준결승전에 오른 것 자체가 ‘새 역사’였다. 바라던 결승 무대엔 서지 못했지만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복싱의 경우 동메달결정전을 따로 치르지 않는다. 준결승전서 패한 선수 2명에게 모두 동메달을 준다. 한국 여자복싱 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남녀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2012년 런던 대회서 한순철이 남자 60㎏급 은메달을 딴 이후 12년 만에 거둔 쾌거다. 아무도 가지 못했던 그곳으로 위대한 첫 발을 내디뎠다.

 

사진=뉴시스 / 임애지가 4일 프랑스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결승에서 튀르키예 하티세 아크바시를 상대로 경기를 펼치고 있다.

 

◆ 타고난 DNA, 더해진 구슬땀

 

DNA부터가 남달랐다. 어머니가 마라톤 선수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를 곧잘 했다. 실제로 육상을 하기도 했다. 처음 복싱을 마주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취미로 시작한 복싱이 임애지 인생을 바꿨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걸었다. 당시 임애지가 다니던 중학교에 복싱팀이 없어 다니던 체육관에서 훈련을 받았다. 보기 드문 사우스포(왼손잡이) 유형으로서, 날카로운 카운터(뒷손 공격)와 빠르고 경쾌한 스텝을 갖추고 있었다.

 

타고난 운동 감각.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피나는 노력과 성실함, 임애지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소문난 연습벌레다. 복싱을 접한 이후 하루도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매일 새벽에 기상, 1시간 30분 동안 뛰고 또 뛰었다. 방과 후엔 4시간 넘게 체육관에서 줄넘기와 샌드백에 집중했다. 웬만한 남학생들과 겨뤄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꼼꼼하게 상대를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는 것은 물론 경기가 끝난 후엔 돌아보며 보완점을 찾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 임애지가 4일 프랑스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결승에서 입장하며 인사하고 있다.

 

◆ 비인기종목, 복서로 살아간다는 것

 

복서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국내 인기가 크게 줄었다. 그만큼 선수층이 얇아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설상가상 국제 복싱계에서도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외로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임애지는 버텼다. 자신만의 커리어를 작성해나갔다. 2017년 세계 여자유스선수권대회서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을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서 출격하며 차곡차곡 경험도 쌓았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AG서 1경기 만에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어렵게 첫 출전권을 따냈던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에서도 마찬가지.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슬럼프가 찾아왔다. 지난 3월 올림픽 예선 1차 대회 8강전에서 탈락하는 등 패배가 이어졌다. 반갑지 않은 부상 악재로 훈련마저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6월 태국에서 열린 올림픽 2차 예선 도중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다. 

 

흐르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다. 혼자가 아니었다. 주변엔 함께 울고 웃는 감독과 코치, 동료들이 있었다.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임했다. 기어코 16강전, 8강전서 내리 승리하며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대회 직전 왼쪽 어깨와 햄스트링을 다쳤지만 임애지를 막진 못했다. 한 경기 한 경기 투혼을 발휘하며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북한의 간판 복싱스타 방철미도 “수고했다, 많이 늘었더라”고 격려했다. 결국 시상대에 올랐다.

 

사진=뉴시스/ 전남 화순군 하니움문화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임애지의 복싱 여자 54㎏급 준결승전 응원전, 관람을 온 시민들이 열띈 응원을 펼치고 있다.

 

◆ 또 한 번, 꿈을 꾼다

 

동메달을 딴 뒤 임애지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간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떠올렸을 듯하다.  끝이 아니다. 이번 올림픽은 임애지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줬다. 욕심이 생겼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챙겼다. 내친김에 2028 LA올림픽까지 바라보고자 한다. 임애지는 “훈련하다 보면 또 4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면서 “올림픽 무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선수들이 작은 대회부터 열심히 하고 있다. 관심 있게 봐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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