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명상 공간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인 '성황림'
1년에 단 두 차례 ‘성황제’때 개방
원주 8경 중 하나인 '용소막 성당'
프랑스 성당 종탑·아치 등 인상적
1일 5000원으로 '시티투어버스'도
겨울에 어울리는 여행지를 찾는다면 강원도 원주는 어떨까. 여행지보다는 도시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졌는데 착각이었다. 이곳은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마다 가볍게, 자주 다녀오기 좋은 여행지다.
청량리역뿐 아니라 서울역에서도 원주로 향할 수 있다. 1시간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서원주, 만종역에 도착한다. 자동차 없이, 자동차로 가는 것도 좋지만 KTX를 타고 원주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다녀도 충분하다. 뚜벅이 여행객이라도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도시다.
요즘에는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걷기 좋은 여행지가 부상하고 있다. 원주에는 혼자, 연인끼리, 친구들과 인생샷도 남기고 걸으면서 대화하기 좋은 공간이 아주 많다. 편안하게 둘러보기 좋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여행지를 모아봤다.
◆안도 타다오의 ‘터치’로 완성된 ‘뮤지엄 산’
원주 월송리에 커다란 노출 콘트리트 건물. 바로 건축계 거장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Museum SAN)이다. 이곳은 사계절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품에서 문화와 예술의 선율을 느낄 수 있는 전원형 뮤지엄이다.
뮤지엄 산은 매년 수십만명이 방문하는 원주의 명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도 빠지지 않는다.
풍성한 자연 속에 구성된 세 개의 가든을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이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뮤지엄산에서 비치한 우산을 쓰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옹기종기 귀엽다.
특히 초승달을 닮은 웰컴 센터를 지나 펼쳐지는 겨울의 주인공 자작나무숲이 인상깊다.
뮤지엄산의 야외가든, 종이박물관, 미술관, 제임스터렐관을 둘러보고 명상관까지 다녀오면 3~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반나절을 투자해도 좋을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이다. 다음에는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새하얗게 변한 뮤지엄산을 보고 싶다.
혼자 조용히 걷는 것도 좋지만, 본격적인 명상도 가능하다. 안도 타다오는 뮤지엄산 개관 5주년을 기념해 2019년 돔 형태의 명상관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전문가의 티칭을 따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날은 누워서 진행되는 인기 웰니스 프로그램 ‘쉼 명상’을 들었다. 아로마향, 싱잉볼, 오디오, 여기에 빗소리가 돔 형태의 공간을 채운다. 이내 편안하게 코를 고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짧은 쉼이지만 개운함은 강렬하니 꼭 들어볼 것.
최근 뮤지엄산의 두 번째 명상 공간도 문을 열었다. 심자가 모양으로 열린 공간에 빛이 바닥까지 이어진다. 지난 7월 공개한 ‘빛의 공간’이다. 안도 타다오가 오사카에 설계한 ‘빛의 교회’에서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이 공간에서는 빛의 움직임으로 인해 시간의 변화를 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
또 다른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면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만나는 공간으로 향해보자. ‘제임스 터렐관’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감동을 느껴볼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길 원했다고. 오랜만의 ‘노 포토존’이다. 사진 대신 오감으로 감동을 기억하는 경험이 가능하다. 터렐의 작품 관람은 유료 투어 프로그램 형식으로 30분 간격으로 진행된다. 특히 매주 금~토요일 저녁에 진행되는 컬러풀 나이트를 추천한다. 작가의 인공조명과 자연 하늘빛의 조화가 아름답다. 오크밸리 인근에 숙소를 잡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관람해도 좋을 듯하다.
◆대대로 모셔온 성황신 깃든 숲… 성남리 성황림
언제부터 이 자리를 지켰을까? 신이 깃들어 마을을 지켜준다는 숲, ‘성황림’으로 향했다. 마치 비밀의 숲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성황림 표지판 앞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알고 보니 이곳은 1962년 6만3877㎡ 규모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를 위해 일반에 개방하지는 않고 있다. 성남리 성황림은 온대지방을 대표할 만한 활엽수림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고, 조상들의 과거 종교관을 알 수 있는 민속자료로서의 기능을 한다. 다만 성황제가 열리는 음력 4월 7일과 음력 9월 9일 1년에 두 번 개방한다.
1970년대에만 해도 소위 ‘기도발’ 잘 받는 곳으로 입소문을 타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1989년 사람의 출입을 막고 숲 보호에 나섰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30년, 숲이 원시림에 가까운 형태로 다시 깨어났다. 현재 성황림 입구에 설치된 자물쇠는 단 두 개. 그 중 하나를 마을에서 관리한다.
이날 입구에서 고계환 숲해설가를 만났다. 이전 성남2리 이장을 지내고 4대가 이곳에서 살았다는 ‘로컬 전문가’다. 고 해설사가 문을 열고 숲길에 함께 들어선다. 분명 도로 옆이였는데, 몇 발자국 들어간 정도인데도 숲의 분위기에 둘러싸인다. ‘과연 신의 숲이군’ 싶다.
숲 한가운데 서낭당이 보인다. 금줄이 걸려 있고, 소원을 쌓은 듯한 돌탑도 보인다. 서낭당 오른쪽에 곧게 솟은 전나무가 서낭당 주인이고, 왼쪽 음나무가 안주인이다. 오른쪽의 전나무는 숲 유일의 침엽수. 당집을 세우기 전부터 신목(神木)으로 모신 나무라고. 성인 남성 세 명이 손을 맞잡아야 겨우 둘러쌀 수 있다. 고계환 해설사는 “기를 받겠다고 나무를 껴안는데, 그보다는 가만히 나무에 기대어보라”고 팁을 전했다.
전나무는 남성과 양의 기운을, 음나무는 여성과 음의 기운을 맡아 조화를 이룬다. 이를 토대로 나무 신의 숲을 지키고 인간이 사는 마을의 길흉화복도 보살핀다는 게 고 해설사의 설명이다.
서낭당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명상하기 좋은 너른 터가 나온다. 고 해설사는 “어릴 때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던 장소”라고 소개했다. 이곳에서 지금은 사람들이 명상을 한다. 나무에 기대 3분간 ‘멍때리기’에 나선다. 낙엽이 흐트러지고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져 듣기 좋다.
한편, 성황림은 20명 이상 단체라면 개방일에 상관없이 관람할 수 있다. 예약은 필수. 성남2리(성황림마을) 체험관을 통해 하루 최대 200명까지 예약 가능하다. 마을 체험관 앞에 모여 마차(트랙터)를 타고 숲으로 향하는 재미도 있다. 숲 입장료는 없지만 마을에서 운영하는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1인 1만2000원부터.
◆따뜻하고 아늑한 ‘용소막 성당’
단순 인스타그래머블 명소가 아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분위기, 고즈넉한 산책이 가능한 곳 바로 ‘용소막 성당’이다. 원주 8경 중 하나다. 이는 풍수원성당과 원주성당에 이어 강원도 내에서 세 번째로 건립된 성당이다. 처음에는 초가였지만 시잘레 신부에 의해 현재의 벽돌 건물로 지어졌다.
당시 시잘레 신부는 신자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중국인 기술자들을 써서 성당 건축을 시작, 1년여 만인 1915년 가을에 양옥 성당을 완공했다. 건축 기술과 재료 부족 등으로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본국인 프랑스의 전형적인 성당의 외관 중 중앙의 종탑과 아치 등 수직성을 강조하는 요소가 주로 채택되고 나머지는 생략됐다. 오히려 개성있다. 붉은 벽체와 회색 버팀벽이 따뜻한 느낌을 준다. 지금도 문고리, 벽면 등 과거의 흔적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다. 파란 하늘과 빨간 벽돌이 대조를 이뤄 아름답다. 수령 150년이 넘은 느티나무들이 성당을 에워싸듯 품고 있다. 나무 아래 앉아서 사색에 잠겨보자.
이날 용소막 성당에서는 오전 평일미사를 마친 신자들이 나오며 신부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에서 올라왔다고 말하니 성당 외관과 함께 십자가의 길, 성모동산을 함께 둘러볼 것을 권한다.
십자가의 길은 성당 왼켠의 선종완(로렌조) 신부 유물관 뒤편의 언덕으로 이어진다. 이어 성모동산이 펼쳐진다.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기 직전까지의 예수의 여정을 조각으로 만나볼 수 있다.
TIP. 뚜벅이 여행도 OK, ‘원주시티투어버스’ 있잖아요
원주시에서는 자차 없이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는 여행객을 위한 ‘시티투어버스’가 잘 운영되고 있다. 순환형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면 성인 기준 1일 5000원으로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뮤지엄산, 오크밸리, 소금산 그랜드밸리 등 관광지를 편안하게 다닐 수 있다. 특히 뮤지엄산에서 시티투어버스 표를 제시하면 20%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원주=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