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부담 확대 불가피…소비 위축에 성장률 더 낮아질 듯
[세계비즈=오현승 기자]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한 번에 기준금리를 50bp나 올린 건 고삐풀린 물가를 잡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한은도 통화정책의 초점을 물가 안정에 두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은 더욱 불어나게 됐다. 주요 경제 주체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 우리 경제의 회복 속도도 지연될 우려가 크다.
한은으로선 6%까지 올라선 소비자물가를 잡기 위해 ‘빅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50bp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게 중론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6.0% 급등했다. 지난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 만의 최대치다. 현 흐름이라면 소비자물가가 하반기 중 7%대까지 오를 거라는 우려섞인 관측도 나온다. 일반 소비자의 향후 1년 예상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뜻하는 기대 인플레이션도 3.9%까지 크게 올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긴축 강도를 높이고 있는 점도 금통위가 빅 스텝을 단행한 이유다. 미 연준은 오는 26~27일 열리는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지난 5월에 이어 또다시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75bp 인상)’을 단행할 태세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달 FOMC가 기준금리를 75bp 올릴 가능성은 93%에 이른다. 1주일 전(85%)보다 8%포인트 상승했다. 한은으로선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자금 유출을 최소화하고,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방 압력을 낮추기 위해 연준의 통화정책에 반하는 결정을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문제는 가계의 빚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부터 1년가량 이어진 금리 정상화 흐름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은 커질대로 커진 상태다. 한은은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서 기준금리가 50bp 오르면 가계의 이자지급 부담은 2020년말 대비 5조8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 경우 대출자 1명 당 연간 이자부담규모는 같은 기간 271만원에서 301만원으로 30만원 늘어난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은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로 지목되는 자영업자 대출에도 부담 요소다. 한은은 같은 보고서에서 기준금리가 50bp 오르면 자영업자의 이자부담은 2조9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가계의 빚 부담 확대는 민간 소비 개선세를 저해한다. 지난달 기획재정부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방역조치 해제 등으로 올해 민간 소비가 3.7% 증가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가계의 이자지급 규모가 늘어나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이어지게 되면 이 같은 내수 회복은 요원해진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월 내놓은 ‘경제위기 회복 국면의 시기별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금리 상승 및 가계부채 누증에 따른 가계소비 여력 약화 등으로 민간소비의 회복 속도가 이전 위기 기간에 비해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코로나19가 재유행 조짐을 보이는 것도 악재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세를 제약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5월 금통위에서 한 위원은 “우리나라의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모두 단기금리와 연동성이 강하므로, 채무상환부담과 자금조달비용의 급격한 상승이 실물경기 회복을 제약할 수 있다”며 “특히 기업대출금리는 기준금리와의 연동성이 강하므로 기준금리의 가파른 상승이 신용위험 증가와 투자위축을 유발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지난 11일 ‘한미 정책금리 역전 도래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50bp 올리면 기업의 대출이자 부담 규모는 약 3조9000억원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했다. 기획재정부, 한은 및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우니라라의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초 3%대에서 2%대 중반대로 일제히 내려잡았는데, 다음 수정 전망치 발표 땐 기존 전망치를 또다시 하향 조정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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