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부터 2021년까지.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으로 시작해 도쿄올림픽으로 마무리했다. 14년간 가슴에 달고 소중히 아꼈던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배구공은 여전히 손에 쥐고 있다. 여자프로배구 센터 양효진(32·현대건설)이 코트를 채운다.
◆이제 떠납니다
양효진은 지난 8일 막을 내린 2020 도쿄올림픽 종료 후 김연경(중국 상하이), 김수지(IBK기업은행)와 함께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황금세대의 주축이었던 이들은 마지막 대회인 올림픽서 4강 신화를 쓰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태극마크와의 이별을 결정하고 마음의 준비까지 했지만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양효진은 “올해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를 치르며 정말 힘들었다. 셋이서 이제 마지막이니 조금만 더 힘내보자는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며 “막상 대표팀 은퇴가 현실로 다가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시원하고 후련할 줄 알았는데 ‘이제 진짜 물러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도쿄서 눈물바다를 이뤘다. 양효진은 “동료들 앞에서 목놓아 운 것은 처음이었다. 언니들도 정말 많이 울었다”며 “어릴 적 대표팀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해 수많은 대회가 떠올랐다. 마음속에 있던 감정들이 나왔던 것 같다”고 전했다.
후배들이 바통을 이어받아야 한다. 양효진은 “내가 선수들을 평가할 위치는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왔다. 해내려는 의지, 배구를 향한 열정이 커 보기 좋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우리도 처음엔 국제대회 성적이 저조했다. 힘든 시기를 많이 겪었다”며 “초반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격려했다.
◆행복했습니다
양효진은 국가대표로 뛰는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성장했다고 말한다. 그는 “처음 프로팀에 입단했을 때 속공을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때려야 하는지 잘 몰랐다. 외국 선수들을 보며 느낀 점이 많았다”며 “빠르게 때리는 선수, 천천히 떠서 상대를 보고 때리는 선수, 끌어 때리는 선수 등 다양한 스타일 중 내게 맞는 유형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돌아보니 내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시야도 한층 넓어졌다. 과거에는 같은 포지션인 센터들만 유심히 봤다. 이번에는 모든 선수의 플레이를 살폈다. 양효진은 “내가 블로킹할 때 어떻게 따라가 막아야 하는지 봤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대표팀 감독님께서 알려주신 방법대로 한 뒤 타이밍을 잘 잡게 됐다”고 밝혔다.
올해 도쿄 무대서 국민들의 응원에 따듯함을 느꼈다. 양효진은 “메달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많은 분들께서 좋게 봐주시고 박수를 보내주셨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뜻깊다”며 “2012 런던올림픽 때는 메달을 따지 못한 게 정말 아쉬웠다. 이번에는 우리가 배운 것, 얻은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고 미소 지었다.
◆다시 뜁니다
소속팀 현대건설로 돌아왔다. 지난 23일 막을 올린 2021 의정부·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서 몸을 풀었다. 첫 경기엔 결장했다. 두 번째 경기인 지난 24일 IBK기업은행전서 블로킹 10개 포함 팀 내 최다인 16득점(공격성공률 60%)으로 실력을 뽐냈다.
강성형 현대건설 감독은 “중앙의 활용도를 낮추고 양 날개 위주의 배구를 하려고 했다. 양효진을 보니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센터를 적절히 사용해야 할 것 같다”고 웃었다. 양효진도 “감독님께서 레프트, 라이트를 살려 빠른 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나까지 활용하면 더 좋은 효과가 난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며 “여러 공격수가 동시에 공격을 준비하면 상대 블로킹에 혼란을 줄 수 있다. 경기를 수월하게 풀어나가는 방법”이라고 화답했다.
늘 그랬듯 묵묵히 주어진 역할을 준비한다. 양효진은 “대표팀에서 계속 경기를 뛰고 온 상태라 실전 감각이나 기술 면에서는 괜찮은 것 같다”며 “체력이나 컨디션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다가오는 V리그 개막까지 몸 관리를 잘하겠다. 새 시즌도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말했다.
사진=FIVB,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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