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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방탄소년단 빌보드 수상, 미국이 변했다

입력 : 2017-05-25 10:24:06 수정 : 2017-05-25 10: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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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 2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7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 톱소셜아티스트 부문 상을 수상했다. 해당부문은 앨범 및 디지털음원 판매량, 라디오방송 및 스트리밍 횟수, 공연과 소셜참여지수 등 데이터에 글로벌 팬 투표를 합산해 최종 수상자를 결정하는 상이다. 지난 2011년 신설된 이후 미국 아이돌스타 저스틴 비버의 독주체제가 이어지다 이번에 처음 수상자가 바뀌었다. 그러나 단순 수상소식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 내 언론들의 전에 없는 K팝 주목도다. 방탄소년단 수상소식이 실질적으로 대중음악 관련 거의 대부분 언론에서 크게 다뤄졌고, 그 팬층이 어느 정도 규모인가도 이번에 더 역력히 드러났다. 이른바 ‘넥스트 씽(Next Thing)’으로서의 입지를 명확히 다졌다.

확실히 대단한 쾌거다. 그간 원더걸스, 보아, 세븐, 비, 소녀시대 등 수많은 K팝 아티스트들이 도전하고 또 좌절해온 K팝 미국시장 진출에 제대로 된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그럼 저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어째서 그 첫 타자가 방탄소년단으로 낙점됐느냐에 대해선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물론 본인들 노력을 첫째로 드는 게 당연하겠지만, 보다 큰 차원에선 K팝이 ‘결국’ 미국까지 도달하는데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자. 보다 현실적인 입장에서다. 과연 미국시장의 ‘어떤 요소’가 K팝에 대한 전반적 분위기를 이토록 바꿔놨느냐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빌보드뮤직어워드 쾌거 직전인 지난 7일 미국 뉴욕타임즈 매거진에 게재된 칼럼 ‘K팝 그룹이 남미에서 거센 돌풍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인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용 자체는 이렇다 할 원인분석이라기보다 방탄소년단을 중심으로 한 열풍 스케치 정도다. 그러나 왜 지금 같은 시점에 저 정도 권위 있는 매거진에서 남미 분위기를 전하는 지 가늠해봐야 한다. 사실 이유는 단순하다. K팝의 남미 인기는 미국에서의 인기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미국은 다인종국가다. 그러나 지난 20년 사이 그 인종비율은 크게 바뀌었다. 미국 공공정책 싱크탱크 카시협회에 따르면, 2012년 현재 미국 내 인종별 비율은 백인 53%, 히스패닉계 24%, 흑인 14%, 아시안 4%, 기타 5%다. 20년 전만 해도 2위 인종이었던 흑인을 히스패닉계가 크게 앞질렀다. 더 중요한 건 성장세다. 히스패닉계는 10년 전과 대비해 무려 43%가 성장했다. 이 같은 결과에 따라 미국 내에서 히스패닉은 2060년이 되면 30% 가깝게 성장하리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들 미국 내 히스패닉계 특징은 여러 가지다. 먼저 이민 및 불법체류 1세대가 많아 남미의 각종 문화적 유행이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애초 가톨릭이란 종교를 바탕으로 갖가지 전통들이 뚜렷이 계승되고 있어 사실상 남미본토 주민들과 정서적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발견된다. 이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자리 잡으면서 벌어진 첫 번째 대중문화 현상이 바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히스패닉계 팝가수이자 배우인 제니퍼 로페즈의 스타덤 등극이었다. 실질적으로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의 열광적 호응과 지지가 그녀의 초기입지를 마련해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13년이 되자 아예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멕시코영화 ‘사랑해, 매기’가 북미지역에서 44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둬들이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제 이 같은 미국 내 히스패닉계의 ‘선택’은 한류 콘텐츠로 왔다. 2014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K팝 팬덤 주류인종은 33.8%를 차지하는 아시아계였지만, 바로 뒤따르는 2위는 21.4%를 차지한 히스패닉계였다. 생각보다 큰 차이도 나지 않고, 또 지금처럼 K팝이 점차 보편화되고 히스패닉계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면, 곧 1위 자리로 히스패닉계가 올라설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미 현상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히스패닉이 지지하는 대중문화 현상은 곧 미국 내 주류에 무한히 가까워진다. 그러니 현 시점 K팝 현상의 대표 격인 팀, 특히나 페루와 칠레 등 남미공연을 막 마치고 미국에 입성하는 ‘정석코스’를 밟은 방탄소년단을 인식하고 언론에서도 주목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인다. 대체 남미인 및 남미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은 어째서 K팝에 그토록 목메어 열광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단순하다. 모든 한류 현상의 첨병, TV드라마가 먼저 남미시장에 치고 들어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과 남미는 사실상 정서가 비슷하다. 2015년 한국을 찾은 멕시코 텔레비사 방송사 책임프로듀서 후안 오소리오 오르티스 입에서도 바로 “한국과 중남미지역은 감정적인 측면을 공유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남미지역도 한국처럼 사랑이나 우정 등 ‘인간관계’에 집중하는 대중정서가 존재한다는 점, 둘째 남미도 극적인 감정표출 등 상대적으로 격한 정서에 공명한다는 점, 그리고 셋째 남미 역시 계급갈등이 극심해 신분격차를 바탕으로 한 설정에 관심이 많고 또 그를 즐긴다는 점. 여기에 TV드라마 형식 자체도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시추에이션극이 아니라 한국과 똑같은 텔레노벨라, 즉 연속극 형식이란 점도 한국 TV드라마의 수월한 진입을 견인한다.

그렇게 가능성을 보고 2001년 페루 국영방송 TNP에서부터 ‘별은 내 가슴에’ ‘이브의 모든 것’ 등 한국드라마를 내보낸 것을 기점으로, 한국드라마는 이후 10여년 동안 남미 방송시장 거의 전체에 침투해 자기 자리를 만들었다. 한국드라마는 남미의 보편정서 및 관심사와 유사하면서도, 리얼리즘에 집착하는 한국대중문화 특성 탓에 상대적으로 설득력 있는 전개와 인물묘사로 큰 호응을 얻었다.

그 다음이 K팝이었다. 한국드라마가 틈새시장에서 자리 잡은 2009년 즈음을 기점으로, 몇몇 한국드라마에 출연한 K팝 아이돌 음악을 찾아듣는 젊은 층이 하나둘 등장했다. 라틴문화 사이트 REMEZCLA와의 인터뷰에 응한 멕시코계 미국소녀 오달리스 로하스도 같은 경로를 거쳤다. 졸속 남미 텔레노벨라에 질려 그보다 섬세한 한국드라마에 재미를 들였다가, ‘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출연한 최민호가 보이그룹 샤이니 멤버란 사실을 알고부터 K팝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물론 이런 초기 진입단계를 거친 뒤론 굳이 TV드라마를 거치지 않고도 K팝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시장에 침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K팝만의 또 다른 인기요인들이 더 붙는다. 미국 내에서 히스패닉계는 같은 유색인종으로 묶여 문화적으로 흑인문화권에 편입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흑인문화의 난폭하고 거친 표현양식은 낙태조차 절대금기시 할 정도로 가톨릭 교리에 충실하며 가족주의가 강조되는 라틴문화와 충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REMEZCLA와의 인터뷰에 응한 또 다른 히스패닉계 소녀 에멜리 바르가스는 “언제까지 ‘난 마약을 복용하고 마약을 팔아, 이 엉덩이 큰 계집들아’ 같은 내용의 노래를 음악이라고 참아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하나, K팝은 그 팬층을 절대 심심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 4년 만에 신보를 발매하는 아델 등 기존 미국 팝가수들과 달리, K팝 아이돌들은 1년에도 몇 번씩 새 미니음반을 들고 돌아오며, 각종 방송출연도 잦아 끊임없이 볼거리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격하고 급한 한국인 성미와 비슷한 남미인들에겐 딱 적합한 아이템이었던 셈이다.

어찌됐건 이처럼 예상치 못했던 원인들과 그만큼 신기한 코스를 거쳐 방탄소년단의 빌보드뮤직어워드 수상까지 이른 지금, K팝의 현주소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계가 그토록 갈망하던 세계대중문화 메카 미국 진출의 꿈이란, 사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 미국에서의 한류 견인을 절대적으로 이끈 히스패닉계 미국인은, 43년 뒤엔 지금의 배가 된다. 이제부터가 원더걸스, 보아, 세븐, 비, 소녀시대 등이 힘겹게 쏟아 부었던 투자를 회수해야 할 시점이란 얘기다. 건투를 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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