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 감독 결별에서 드러난 ‘정몽규 리스크’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오른쪽)과 파울루 벤투 국가대표 감독 / 뉴시스

결국 ‘돈’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자 HDC그룹 회장이 지난 1월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와 관련한 ‘리스크’가 발목을 잡은 셈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이번 2022 카타르월드컵을 끝으로 축구대표팀을 떠난다. 표면적으로는 계약 만료다. 앞서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계약기간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벤투 감독은 4년 뒤 열리는 ‘2026 북중미(미국·캐나다·멕시코 공동개최) 월드컵’까지 4년 연장을 제시했고, 반면 대한축구협회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 1년 계약을 한 뒤 성적에 따라 기간을 연장하는 카드를 내밀었다.

 

각자의 의견을 제시한 것은 지난 9월이다. 16강 진출의 성과를 낼지 모르는 상황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이다. 이번 월드컵 직후 재계약 협상을 했다면, 벤투 감독이 협상 테이블의 주도권을 쥐었을 것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성과와 여론을 반영해야 할 대한축구협회 입장에서는 벤투 감독과의 재계약에 초점을 두고 협상을 진행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계를 지난 9월로 되돌려 볼 필요가 있다. 협회는 왜 ‘1년+α’를 제시했을까. 벤투 감독과 재계약을 한다면 연봉이 상승한다. 월드컵 전이기 했지만, 분명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었다. 한국 축구는 2018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3위였다. 2018 러시아월드컵이 개막한 시점에서는 57위까지 떨어졌다. 이후 벤투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한국 축구는 2019년 40위, 2020년 38위, 2021년 33위, 2022년 28위까지 올라섰다. 이 성과만으로도 연봉 협상 과정에서 상승분을 반영해야 한다.

 

4년 계약은 성적을 떠나서 자금상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다시 9월로 시계를 돌려보면, 당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사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오던 시기였다. 지난 1월 HDC현대산업개발이 진행하던 광주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대형 붕괴 사고가 터졌다. 이 사건으로 정몽규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HDC그룹 회장과 대한축구협회장직만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형 사고가 터진 만큼 대한축구협회장직도 물러날 것이라는 예상이 팽배했다. 그만큼 축구협회장 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정몽규 회장이 그동안 꾸준히 사재를 출연해 대한축구협회를 지원해 온 것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 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대한축구협회는 대형 스폰서와의 재계약 기간 시점을 맞이했다. 대형 스폰서 중 하나인 KEB하나은행과는 올해 계약 기간이 끝나고, 재계약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교보생명 역시 올해까지다. 이어 KT, 현대자동차, 아시아나항공는 2023년 계약 만료다. 물론 이들은 수년째 계속해서 재계약을 하면 축구협회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9월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정몽규 회장이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월드컵 16강 여부도 불투명했다. 결국 ‘돈’ 걱정이 앞선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김판곤 전 대한축구협회 감독선임위원장은 벤투 감독을 선임할 당시 “앞으로 4년간 인내하고 잘 지원하면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감독이라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실제 벤투 감독은 4년의 인고의 시간을 보냈고, 한국 축구를 발전시켰다. 향후 4년은 한국 축구를 한계단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이미 세계적인 강팀은 이러한 경험을 했다. 특히 이번 월드컵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 프랑스 감독은 2012년 7월부터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이끌며 2018 러시아월드컵, 2021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 정상에 오르며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요하임 뢰브 전 독일 감독, 오스카 타바레스 우루과이 전 감독, 베센테 델보스케 전 스페인 감독 등은 최소 8년에서 15년 동안 대표팀을 이끌었다. 물론 이들은 세대교체 실패로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지만, 국제 메이저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는 등 대표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1~2년 만에 계속 감독이 바뀌어왔던 한국 입장에서는 장기 집권 체제가 필요하기도 하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 성과를 냈기에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스스로 이 기회를 발로 찼다. 여기에 ‘돈’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분명한 점은 대한축구협회가 차기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4년 계약은 할 수 없다. 애초 벤투 감독에게도 ‘1년+α’를 제시했다. 다음 감독 역시 이 카드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만약 협회가 차기 감독에서 4년 계약을 제시한다면, 스스로 ‘돈’ 때문에 월드컵 16강 진출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한국 축구는 다시 추락할 위기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