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15경기가 남았어요. 포기하지 않고 한번 해보겠습니다.”
여자프로농구 하나은행은 힘든 전반기를 보냈다. 시즌 초부터 선수들의 부상 악재가 겹친 끝에 4승11패 승률 0.267에 그쳤다. 6개 구단 중 최하위다. 팀의 맏언니 포워드 김정은이 최다득점 신기록 달성에도 마냥 웃지 못한 까닭이다. 프로 데뷔 19년 만에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여자농구 레전드 정선민을 제치고 통산 득점 1위로 올라선 것. 23일 기준 8179점을 마크했다.
하지만 기쁨을 누리는 건 팀의 반등 이후의 일이다. 그는 “팀 성적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굉장히 마음이 무겁다”며 “내 기록만을 두고 즐거운 마음을 품기에는 상황이 여의찮다. 팀이 올라간 다음에 비로소 웃을 수 있을 듯싶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팬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2일까지 진행된 하나은행 2024~2025 여자프로농구 올스타 팬 투표에서 15200표를 받아 7위에 올랐다. 별들의 잔치에 초대받은 건 통산 11번째다. 올해는 더 특별하다. 홈 부천체육관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은 2011∼2012시즌 이후 12년 만이다.
“친정 유니폼을 입고 홈 팬들과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뜻깊다”고 한 김정은은 “선수 생활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렇게 홈그라운드에 올스타로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다. 다시 한번 팬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부상 악령에 속을 썩였다. 동료들도 번갈아 가면서 다쳤다. 김정은의 경우 개막전부터 종아리 부상에 시달린 바 있다. 그는 “오랜 시간 뛰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올 시즌이 굉장히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다. 나부터 시작해 박소희, 김시온, 진안, 정예림, 양인영 등 6명이나 부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막을 앞두고 큰 기대를 모았던 김정은-진안-양인영 ‘트리플 포스트’도 정상 가동이 어려웠다. 팀과 김정은 개인 모두 후반기 보완과제가 될 전망이다. 김정은은 “셋이 제대로 합을 맞춰볼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 올스타 휴식기가 정말 중요하다. 부족했던 수비 집중력도 채워야 한다. 단기간에 재정비를 할 수 있는 부분은 잘 추스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반등을 노린다. 김정은은 “경기에서 진 날은 버스로 향하는 길이 정말 괴로웠다”면서 “기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팬들께 면목이 없더라. 너무 죄송한 마음이었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 아직 15경기가 남았고, 팬들을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볼 생각”이라고 힘줘 말했다.
한편, 21일 부천서 올스타 페스티벌 1일차 행사로 열린 W-페스티벌은 특별한 순간을 남겼다. 경기도 지역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143명의 학생이 참가했고, 김정은을 비롯한 한국과 일본 올스타 28명도 함께하면서 활기찬 운동회가 됐다.
이 가운데 농구선수를 꿈꾸는 남매 김연아 양과 김은찬 군 역시 뜻깊은 하루를 보냈다. 특히 하나은행 유소녀 농구클럽 선수인 김 양은 “평소 우러러봤던 김정은 선수와 함께 코트 위에 섰고, 농구공에 사인도 따로 받았다. 오늘 기억은 평생 못 잊을 듯싶다”고 감격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김정은의 인기는 대단했다. 선수 본인은 손사래를 치며 “부천 홈그라운드라서 어린이들이 더 좋아해준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여자농구가 위기라는 소리는 10년 전부터 있었다. 결국 기반이 튼튼해야 선수 풀도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 오늘 만난 학생선수들이 농구선수를 향한 꿈과 흥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농구 꿈나무들에게 “저 나이대에는 별다른 조언이 필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을 즐겼으면 한다. 농구 본연의 재미를 즐기는 게 먼저”라고 애정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부천=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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