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위해, 또 나의 동료를 위해.”
한국에서 역대 두 번째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선수위원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장애인 귀화 1호 패럴림피언 원유민. 홍석만(현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선수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다. 홍석만은 2016년부터 4년간 한국 최초의 IPC 선수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제 원유민도 4년간의 활동을 시작한다. 공식 선거 운동 기간 선수들을 만나 외쳤던 권익 신장을 위해 뛴다. IPC 선수위원은 IPC 위원과 동등한 지위를 가져 선수를 대표해 세계 장애인 체육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목소리를 낸다.
◆운동으로 배운 소통
4살 때였다. 1988년 1월 태어난 원유민은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와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12살 때 장애인 복지 환경이 잘 갖춰진 캐나다로 가족과 함께 이민을 떠났다. 장애를 가진 이방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운동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아갔다. 발군의 실력으로 캐나다 국가대표도 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 출전했다.
끝이 아니었다. 2017년 한국행을 결심했다. 모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이 계기였다.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며 노르딕스키 선수로 전향했다. 아쉽게 평창 무대는 밟지 못했다. 한 선수가 국적을 바꿔 패럴림픽에 출전하려면 기존 국적으로 출전한 마지막 국제대회 이후 3년이 지나거나 이전 국적 국가패럴림픽위원회의 허락이 필요하다. 이에 캐나다 패럴림픽위원회는 응하지 않았다. 포기는 없었다. 노르딕스키 선수로 2022 베이징 패럴림픽에 출전해 태극마크의 꿈을 이뤘다. 한국 귀화 선수가 패럴림픽에 출전한 건 처음이었다.
한국과 동료를 위해 뛴다. 원유민은 캐나다에서 이름 석 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한국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을 키워왔다. 이제는 한국 선수 출신으로 동료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낸다. 그는 “내가 선수위원에 당선된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패럴림픽이 보다 주목받을 수 있게, 우리나라 장애인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힘이 닿는 데까지
혼자였지만, 또 같이였기에 가능했다. 원유민은 지난 5일까지 선거 유세 활동을 펼쳤다. 다른 사람의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선수촌을 쉼 없이 돌아다녔다.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대신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준비를 도운 이들이 많았다. 당선 후 그는 “선거 유세 기간 동안 많은 분이 고생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정말 기쁘다”며 “혼자였다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감사를 전했다.
한국 장애인스포츠의 국제적 위상이 더 높아졌다.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5일까지 진행된 투표에서 원유민은 296표를 받아 입후보 25명 중 네 번째로 많은 득표수를 기록했다. 1위는 육상 레닌 쿠냐(353표·포르투갈), 2위는 수영 블라디슬라바 크라브첸코(340표·몰타), 3위는 육상 마티나 카이로니(309표·이탈리아)가 차지했다. 원유민은 “여러모로 운도 따랐다”며 “미국이나 캐나다 등 큰 나라에서 후보가 나오지 않아 표가 분산된 덕분에 비인기 선수인 나에게도 기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 한국에 진 빚을 갚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였다. 그는 “앞으로 선수들의 이야기를 더욱 경청하고 변화를 만들어,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줄 수 있는 IPC 선수위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생각을 실행으로 옮길 때다. 앞서 선거 유세 활동 중 홍보용 명함 2000장을 들고 선수들을 만났다. 두 손을 맞잡고 고충을 들었다. 귀를 기울였고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원유민은 “현장에 와 있는 선수들은 도핑이나 선수 등급 등에서의 공정함을 강조했고, 이번 대회에 오지 못한 선수들은 패럴림픽이 더 커져서 최대한 다양한 나라 선수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시각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 선수들도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있는 무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힘닿는 데까지 최대한 노력해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최서진 기자·파리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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