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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끝에서 발견한 희망…박진호 일으킨 따스한 손길

입력 : 2024-09-04 17:17:17 수정 : 2024-09-04 17: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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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파리 공동취재단

절벽 끝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장애인 사격선수 박진호(강릉시청)도 그랬다. 월드컵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2002년 가을의 어느 날. 불의의 사고를 마주했다. 낙상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때 박진호의 나이 겨우 25세였다. 꿈 많던 한 대학생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박진호는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를 즐겼다. 태권도, 수영, 육상 등 여러 종목을 섭렵했다. 진로 역시 체육 쪽으로 정했다. 수원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한 이유다. 졸업을 앞두곤 경호업에 종사하거나 태권도장을 운영하고자 했다. 예상치 못한 장애는 좌절이라는 어둠을 데려왔다.

 

완전히 내려놓고자 했다. 스포츠와 멀어진 것은 물론이다.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 일에 대해 고민했다. 공무원 시험까지 알아본 배경이다. 무기력했던 박진호를 깨운 것은 큰 누나 박경미 씨다. “장애인도 운동할 수 있다”고, “선수가 돼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족의 헌신 속에서 그렇게 처음 총을 들었다. 장애인 사격선수로서 인생 2막을 열었다. 앞서 여러 종목을 접했지만 사격만큼 박진호의 마음을 흔든 것은 없었다. 박진호가 바라던 ‘남자다운 스포츠’에도 꼭 맞았다. 서울 정립회관에서 차근차근 사격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진=파리 공동취재단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조금은 늦은 나이에 장애인 사격 선수가 됐지만 빠르게 입지를 굳혀 나갔다. 선천적으로 운동신경이 좋은 덕분에 성장 그래프가 가팔랐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대회를 휩쓸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2006년 청주시청 장애인 사격부에 입단했다.

 

탄탄대로를 걸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방심한 사이 시련이 조그마한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시합도중 부상을 입은 것. 수술대에 올라야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설상가상 욕창이 생겨 제대로 훈련조차 할 수 없었다. 성적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리적 압박이 커졌다.

 

다시 해보기로 했다. 몸 상태가 나아지자 익숙한 총을 들었다. 마치 처음 배웠던 그때처럼, 기본기부터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만큼 기술적으로도, 멘탈적으로도 한층 단단해진 것은 물론이다. 2014 세계장애인사격선수권 4관왕,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패러게임) 3관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장애인 사격의 진종오란 수식어가 붙었다.

 

고난을 딛고 세상의 중심에 섰다. 박진호의 이야기에 울림이 가득한 배경이다. 혼자선 불가능했다. 큰 누나, 아내, 그리고 욕창으로 힘들어하던 박진호를 끊임없이 격려한 당시 강원묵 청주시청 장애인사격부 감독 등 든든한 버팀목이 곁에 있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있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힘을 합치면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것, 박진호가 들려준 감동이다. 

 

이혜진 기자·파리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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