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먹자, 상 차려라.”
가수 이영지가 자신의 유튜브 콘텐츠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의 시즌3를 예고하며 SNS에 적은 글이다. 해당 콘텐츠는 이영지가 게스트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술방’ 토크 예능이다. 방탄소년단 진, 에스파 카리나 등 다수의 인기 스타가 출연해 이영지와 술잔을 기울이며 화제를 이끌었다.
이영지뿐 아니라 현재 유튜브 토크 예능은 술과 음주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신동엽의 ‘짠한형’, 혜리의 ‘혤’s club’, 성시경의 ‘만날텐데’, 기안84의 ‘술터뷰’ 등 인기 연예인이 이끄는 음주 토크 예능은 수백만 조회 수를 자랑하며 웹예능계를 장악했다.
문제는 이같은 음주 방송을 누구나 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음주를 하지 못하는 청소년은 술방을 보고 술에 대한 호기심이나 환상을 갖기 충분하다. 술방은 장르 특성상 음주가 진솔한 대화를 하기 위한 필수적이고 매력적인 수단으로 비친다.
수많은 토크 예능이 술을 주요 소재로 내세우는 이유는 스타의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다. 술이 곁들여지면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완벽하게 준비된 모습이 아닌, 발음이 꼬이고 풀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스타의 모습은 어쩌면 술이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은 음주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거운 경험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성인이라면 술방 시청 후 술을 마시고 싶을 때 바로 구입해서 마시면 그만이다. 하지만 청소년은 그럴 수 없으니 음주에 대한 환상이나 왜곡된 인식이 점차 커질 수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2022년 실시한 청소년 음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중·고교생의 약 10%는 드라마·예능의 음주 장면을 시청한 후 술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술방이 우후죽순 늘어나자 정부는 지난해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을 개정했지만 실효성은 없다. 기존 10개 항목에 ‘음주 행위를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미화하는 콘텐츠는 연령 제한 등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의 접근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음주 행위를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미화하는 장면에서는 경고 문구 등으로 음주의 유해성을 알려야 한다’는 항목을 추가했을 뿐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부 술방은 경고 문구를 삽입하지만 작은 화면에 잠시 나타나는 단순 문구로 유해성을 알리기엔 역부족이다.
관건은 연령 제한을 통해 음주 콘텐츠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TV와 같은 방송 매체는 방송법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근거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엄격하게 심의를 받는다. 지나친 음주 방송은 제재를 받기도 한다. 유튜브는 방심위의 모니터링 대상이긴 하지만 술·담배 판매 등 불법행위에만 단속이 이뤄질 뿐이다. 음주 장면에 대한 기준은 없을 뿐더러 해외 사업자인 만큼 직접적 규제 또한 힘들다.
정부가 나서서 음주 장면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영상 플랫폼의 셀프 규제에 기대야 하는 실정이다. 국내 개인방송 플랫폼 아프리카TV는 음주 콘텐츠를 게시할 때 연령 제한 설정을 걸도록 했다. 소셜미디어 틱톡은 주류 제품 홍보나 과도한 양의 주류를 소비하는 성인 영상 콘텐츠에 한해 연령을 제한한다.
국내 최다 이용 애플리케이션이지만 음주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유튜브도 자체 가이드라인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영상 콘텐츠 제작자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디어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큰 만큼 적극적인 자율 규제가 필요하다.
유튜브는 이미 자체적으로 ‘노란 딱지’를 운영하며 콘텐츠를 직접 규제하고 있다. 영상을 업로드하는 콘텐츠 제작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연령 제한 설정 등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사회적 폐해 예방은 물론 건전한 음주 문화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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