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이어진다.
임시현-전훈영-남수현으로 이뤄진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은 2024 파리하계올림픽대회에서 새 역사를 썼다. 4강 네덜란드, 결승 중국과 차례로 만나 모두 슛오프까지 가는 혈투를 펼쳤지만 끝내 웃었다. 1988년 서울 대회부터 이어져 온 금메달의 역사를 파리에서도 이어가며 단체전 10연패를 이뤄냈다.
◆경험 부족을 이긴 실력
이번 대회에 나선 3인방에게 따라다닌 꼬리표는 ‘경험 부족’이었다. 에이스 임시현 마저 국제 종합대회 경험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AG)이 전부였다. ‘맏얻니’ 전훈영과 ‘막내’ 남수현은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이다. 셋 다 중압감이 다른 올림픽 무대는 처음이었기에 불안한 시선이 존재했다.
임시현은 항저우 AG에서 37년 만에 3관왕을 달성하며 기량을 입증했지만 전훈영과 남수현은 어려움이 예상됐다. 1994년생인 전훈영은 2014년 세계대학선수권대회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수상한 것이 전부였다. 남수현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예로 지난해 대통령기전국대회 여자 단체전, 전국체전 여자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땄지만 역시나 경험은 부족했다.
국제대회보다 힘들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이들에게 경험 부족을 이겨낼 실력이 있었다. 전훈영은 결승 무대에서 10점을 연이어 꽂으며 맏언니로서 동생들을 이끌었나. 남수현도 슛오프에서 9점을 쏘며 역할을 다했다. 임시현은 랭킹 라운드부터 694점의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며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전훈영은 “진짜 못 보던 선수이기 때문에 저라도 우려가 될 것 같았다”면서도 “짧지 않은 선발전이나 평가전을 다 뚫고 태극마크를 단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뽑혔는데 어떡하나. 공정하게 선발됐다. 우려와 걱정이 있을 수 있지만 좋은 결과만 생각하고 준비했다”고 웃었다.
막내로서 연결 고리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남수현은 “앞 순번이었던 (전)훈영 언니가 헤맬 때 ‘내가 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자신있게 했고 언니도 리듬을 찾을 거라 생각해서 부담은 없었다”고 힘을 실었다.
◆역사는 계속된다
한국 여자 양궁은 1988년 서울 대회부터 36년 동안 단체전 왕좌를 지켜냈다. 올림픽에서 특정 나라가 특정 종목에서 오랫동안 금메달을 독식한 건 드문 일이다. 1984년부터 2021년(도쿄올림픽)까지 미국 남자 수영 대표팀의 남자 400m 혼계영 10연패, 1988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 여자 다이빙의 스프링보드 9연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조 신궁으로 불렸던 김수녕부터 시작한 한국 여자 양궁은 박성현, 기보배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올림픽에서 계속 역사를 써내려갔다.
치열한 내부 경쟁의 결과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부 경쟁은 더욱 심화됐다. 도쿄 대회 때는 안산, 강채영, 장민희가 단체전 9연패를 합작했다. 파리에서는 모두 새 얼굴들이 나서 역사를 이어갔다. 두 대회 연속 올림픽 첫 출전 선수들이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 대회보다 치열하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뚫어낸 결과다. 순수하게 실력만 놓고 치르는 5차례 선발전을 통해 주요 국제대회 출전할 선수들을 뽑는다. 공정하고 철저하게 실력 위주의 선발로 최고의 선수들을 가려내 결과를 냈다.
임시현은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파리에서 단체전 10연패를 달성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대한민국 양궁에 있어서는 왕좌의 자리를 지키는 거였지만 4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고 멤버가 바뀐 지금 저희에게 10연패는 새로운 도전이자 목표였다”면서 “도전이 역사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힘줘 말했다.
파리=최정서 기자 adien10@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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