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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중소의 혁명’ 피프티 피프티

입력 : 2023-04-02 13:08:54 수정 : 2023-04-02 13: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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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첫 싱글 ‘더 비기닝-큐피드(The Beginning: Cupid)’ 타이틀곡 ‘Cupid’ 영어가사 버전이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에서 100위로 진입했다. 이는 데뷔 6개월여 만에 핫100 진입한 뉴진스의 기록을 4개월여 만으로 앞당긴 결과다. 애초 핫100 입성에 성공한 K팝 팀 자체가 손으로 꼽는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및 그 멤버들 솔로나 콜라보 등을 제외하면 솔로로 싸이와 CL, 그룹으론 원더걸스와 트와이스, 뉴진스만 남는다. 여기에 아직 팀명조차 익숙지 않은 피프티 피프티가 더 들어가게 됐단 것이다.

 

 ‘익숙지 않다’는 표현조차 사실 어색하다. 대중적으론 아예 ‘무명’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 ‘Cupid’는 빌보드 핫100 차트 바로 아래 버블링 차트 입성 시점까지 멜론 일간차트 1000위 내에도 못 들어갔다. 100위가 아니라 1000위다. 발매 한 달이 지난 3월24일에야 빌보드 성과 덕에 처음 1000위 내 입성했고, ‘Cupid’ 뮤직비디오 역시 3월28일에야 1000만 뷰를 넘겼다. 피지컬 음반은 3월13일부터 뒤늦게 판매를 시작, 1만2000여장 초동을 기록했다. 두 번째 음반으로서 ‘괜찮은’ 성적이지만, 눈에 띌 만한 수치는 또 아니다.

 

 거기다 피프티 피프티 소속사는 중소 신생이다. 중소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 스타크루이엔티 산하 레이블 어트랙트로 2021년 6월 설립됐다. 소속 연예인도 피프티 피프티가 유일하다. 애초 모회사 스타크루이엔티 자체가 걸그룹을 만들어본 게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듯 국내시장서도 이렇다 할 노하우를 기대하기 어려운 입장인데 해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피프티 피프티는 ‘중소의 기적’이란 흔한 레토릭의 범주조차 훌쩍 넘어선 셈이다.

 

 물론 국내 입지는 약해도 해외서 유독 반응이 와 성과를 거둔 중소기획사 팀들이 그간 없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걸그룹 이달의소녀와 보이그룹 에이티즈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들조차 기본적으론 해외 각지서 형성된 코어팬덤 기반으로 빌보드 앨범차트 빌보드200에서 성과를 보이는 식이었다. 핫100은 전혀 다른 얘기다. 핫100은 실질적 대중 유행 지표다. 그렇기에 피프티 피프티 핫100 입성은 사실상 K팝계가 처음 맞이하는 이변이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표면적 해석은 짧은 시간 내 이미 많이 이뤄졌다. 먼저 ‘Cupid’를 2배속 설정한 음원이 미국 등지 틱톡에서 BGM으로 인기를 모았다. ‘Cupid’ 프리코러스가 칭찬받는 등 노래 자체 매력이 힘을 발휘한 덕이다. 그 기반으로 핫100 입성이 이뤄지자 이젠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 유행이 넘어간다”는 식 레토릭이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보여줄 것도 마땅치 않고 마케팅 폭탄도 퍼붓기 힘든 중소기획사라도 ‘좋은 노래’ 원칙을 고수하면 알아보는 사람이 나온단 ‘중소의 미담’이다.

 

 크게 봤을 땐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상황을 좀 더 섬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피프티 피프티는 사실 기존 해외 K팝 팬들에 홍보가 전혀 안 된 팀이 아니다. 회사 차원 마케팅이 아니라 비평계 반향을 통해 컴백 이전 사전 홍보가 어느 정도 이뤄져있었다. 데뷔 EP ‘더 피프티(The Fifty)’가 지난해 11월 발매 후 음악웹진 이즘 등 국내 비평계는 물론 미국 그래미와 IT매체 매셔블 등 해외서도 찬사를 받으며 2023년 주목할 팀으로 선정된 덕이다. 애초에 신곡 ‘Cupid’가 나오자마자 찾아 듣고 이를 틱톡으로 옮기는 발 빠른 반영도 그런 사전 인지도와 주목도를 바탕으로 일어난 일이다.

 

 한편, 피프티 피프티가 들려주는 음악 역시 미국시장서 늘 일정수준 파이를 차지하는 종류다. 기본적으로 댄스팝이면서 사실상 칠 아웃 계열에 가까운 라운지 음악/커피숍 음악, 소위 ‘듣기 편한 음악’ 말이다. 본국 아티스트 중에도 도자 캣 등이 이미 같은 노선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고, 상당부분 여성아티스트 중심으로 시장파이가 나온다. 그리고 피프티 피프티는 ‘더 피프티(The Fifty)’ EP부터도 이 같은 라운지 노선 기반으로 컨템퍼러리 R&B, 시티팝, 퓨쳐 베이스 등 다양한 서브장르를 넘나들며 높은 완성도로 소화해 오히려 국내보다 해외, 특히 미국서 주목 받은 팀이다. 큰 차원에선 뉴진스가 미국시장서 엄청난 기세로 활약하는 것도 미국대중음악시장 안에서 이와 유사한 공간을 찾은 것이라 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이런 음악 노선에서 중시되는 게, 음악 자체 완성도도 있지만, 특히 가창자의 음색 부분이다. 애초 1990년대 컨템퍼러리 R&B 전성기부터도 미국시장서 가장 중시되던 부분이기도 하다. 폭발적 성량이나 맛깔 나는 테크닉 등을 중시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선 단번에 귀에 꽂히는 특징적이고 듣기 좋은 음색을 갖췄느냐는 점으로 관심과 인지도가 성립되는 부분이 크다. 그런 점에서 피프티 피프티는 멤버 아란을 중심으로 음색의 차별성에 대한 호평이 데뷔 시점부터 워낙 많았고, 뉴진스 등도 비슷한 맥락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어찌 됐건 크게 보면 이런 일들도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K팝이 서구시장서 급격히 팬덤을 늘려 인지도가 급상승한 덕에 벌어진다고 봐야한다. 대형기획사 팀이든 아니든 K팝이라면 무조건 파고드는 해외 팬들이 생성돼 일단 노출이 손쉬워졌고, 거기서 현지 취향과 맞아떨어지면 국내 반응과 관계없이 스스로 활로가 개척되는 시점이다. 그런데 피프티 피프티 같은 사례는 또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엄밀히 중소기획사 팀의 해외 활로 차원 모델케이스로서 제한적으로만 받아들여야 할 필요도 있단 것이다.

 

 예컨대 콘셉트와 사운드의 빠른 유행을 고려하면서 마케팅 폭탄을 떨어뜨려 충성도 높고 소비의욕 왕성한 코어팬덤을 큰 규모로 생성시키는 대형기획사 블록버스터 전략도 여전히 유효하다. 피프티 피프티 사례는 다만 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전략이 어려운 여건일 때 상대적으로 진입 틈새가 보이는 해외시장의 장르 공간을 파고든 뒤 그 반향을 통해 역수입도 가능케 하는 방법론이 유효하단 점을 알려준다. 그 맥락에서 3~5명의 많지 않은 그룹 구성도 음악의 멜로디컬한 본질에 부응해 보컬에 포커스가 맞춰진단 점에서 유리해지고, 영어가사 버전을 함께 출시하는 전략도 해외대중시장 이질감을 줄인단 측면에서 먹혀들어간다.

 

 모두 중소기획사 방법론 정석이다. 반대로 말하면, 보다 몰입도 강한 팬덤 기반으로 수많은 상품들을 소비시켜야 하는 대형기획사 전략으론 적합지 않단 얘기도 된다. 어찌됐건 상품성격과 전략은 다양할수록 좋고, 각각의 적용 범위와 차이를 이해할 필요만 남을 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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