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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즐기던 소년… ‘조용한 카리스마’로 글로벌 성공 신화

입력 : 2020-10-26 03:00:00 수정 : 2020-10-25 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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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걸어온 길 / 이병철 창업주, 사람보는 눈 높이 사 / 취임과 동시에 개혁… 기업 DNA 바꿔 / 세계 브랜드 가치 톱10 반열 올려놔

[정희원 기자] 사색을 즐기고 ‘사람관찰’을 좋아하던 어린 소년은 아버지의 국수사업체를 글로벌 거대기업으로 키워냈다. 탁월한 경영능력과 승부사 기질로 지금의 ‘삼성’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42년 대구에서 부친인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모친인 박두을 여사 사이에서 3남 5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건희 회장은 말수가 적고 혼자서 노는 것을 선호했고, 사색을 즐겼다. 해방·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잦은 전학과 이사의 영향으로 여겨진다. 그는 1945년 해방 이후에야 어머니와 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형으로는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 씨, 고인이 된 창희 씨가 있다. 누나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 씨가 있다.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 씨가 유일한 동생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맨 뒤)이 1972년 장충동 자택에서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삼성전자 제공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3년, 이건희 회장은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난다. 그는 분해, 조립, 해부에 관심을 기울이며 기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기계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자동차로 이어진다. 이 회장은 당시 와세다대에 다니던 둘째형과 같이 지냈지만, 나이차이가 9살이나 나다보니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건희 회장은 고교시절엔 서울대 사범대 부속고등학교(서울사대부고)에 진학했는데, 딱히 말이 없고 행동도 느릿느릿한 학생이었다. 당시 동창이었던 홍사덕 전 의원에 따르면 “학과공부에도 별 뜻이 없어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사냐고 물어보면 ‘나는 사람공부를 제일 많이 한다’고 답했다”고 했다. 실제로 호암도 이건희 전 회장의 ‘사람 보는 안목’을 높이 평가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80년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와 함께 찍은 사진. 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은 서울사대부고를 마친 뒤 1965년 3월 일본 와세다대 상대을 졸업하고, 1966년 9월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했다. MBA 과정을 마친 뒤 당시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를 만나 맞선을 봤다. 홍 여사가 대학을 졸업한 후인 그해 4월 백년가약을 맺는다.

결혼 후 이건희 전 회장은 삼성 비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보기 시작한다. 삼성그룹 후계자로서의 본격적인 경영수업은 1978년 8월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시작됐다. 호암 이병철 창업주가 위암 판정을 받고 약 2년이 흐른 상황이었다. 호암은 1977년 니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건희가 후계자’라고 공식화했다. 이듬해에는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28층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왼쪽)이 1987년 회장 취임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1987년 12월에는 40대 젊은 나이에 그룹 회장이자 최고경영자(CEO)로 등극한다. 취임과 동시에 이건희 회장은 ‘삼성 개혁’에 나선다. 취임 당시 기업에 팽배해 있는 무사안일주의를 가장 큰 위기로 봤다. 그는 취임 이후 전자와 반도체 사업을 통합하는 사업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또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반도체, 우주항공 등 신사업과 R&D에 공격적인 투자도 이어갔다.

삼성의 DNA가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내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눈부신 성장가도를 달렸다.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이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6년 IOC 위원 선서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의 재임 시기에 스마트폰·반도체·TV 등 세계 1위에 오른 제품은 19개에 달한다. 그간 순위에도 들지 못했던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가치는 톱10 반열에 올랐다.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변화·혁신에 대한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건희 회장은 고찰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조용한 카리스마’로 국내 기업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영면 후에도 그의 리더십은 한국 기업 역사에서 존경받을 것이다.

happy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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