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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금융맨… 현대캐피탈 백승헌 "편견을 바꾸고 싶었다"

입력 : 2020-10-24 03:00:00 수정 : 2020-10-24 10: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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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던 국가대표 출신 배구 선수 백승헌은 은퇴 후 금융사 직원의 길을 선택했고, 이제는 어엿한 11년 차 금융맨으로 자리 잡았다. 

[권영준 기자] "‘운동선수 출신이 뭘 하겠어’라는 편견이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렇게 이 악물고 10년을 버텼고, 이제는 어엿한 금융맨이 됐다."

 

현대캐피탈 천안금융지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190㎝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직원이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살가운 미소를 보냈다. “가끔 고객님을 만나면 혹시 운동선수 출신이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그냥 체대 출신이라고만 대답한다”며 “그래도 간혹 알아보시는 팬도 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주인공은 바로 대학 시절 국가대표 배구팀에 발탁되는 등 차세대 거포로 명성을 날렸던 프로배구 선수 출신 백승헌(44) 현대캐피탈 천안지점 주택담보대출 담당 시니어 매니저(차장)다.

 

백승헌은 고교 시절부터 배구계의 주목을 받으며 ‘차세대 레프트 거포’로 시선을 모았다. 한양대에 진학 후 1년 선배인 최태웅(현 현대캐피탈 감독), 석진욱(현 OK금융그룹 감독·이상 남자 프로배구), 동기인 이영택(현 인삼공사 감독·여자 프로배구)과 함께 1998년 대학배구 전 대회 무패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등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2000년 당시 실업배구 신인 드래프트 2순위로 현대자동차써비스(현대캐피탈 전신)에 입단했다.

현대 캐피탈 백승현이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하지만 실업배구 선수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90㎞가 넘은 강스파이크를 날리며 두각을 나타내는 듯했지만, 잦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재활과 복귀를 반복하다 결국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2009년 은퇴를 결정했다. 백승헌은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왜 그렇게 몸 관리를 잘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남는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은퇴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을 한다”라며 “그래서 직접 경기장에 찾아가는 것이 어색하고 쑥스럽다. 그래도 여전히 TV 중계방송으로 현대캐피탈 경기를 챙겨보며 감독님과 후배들을 응원한다”고 웃었다.

 

은퇴 후 새 삶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백승헌은 “원래 체육 교사가 되기 위해 자격증까지 땄다. 원래 꿈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현대캐피탈 직원 채용의 기회가 왔다”며 “고민 끝에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현대캐피탈 천안 금융지점 주택담보 대리 1년 차로 금융맨이 됐다”고 설명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기’였다. 백승헌은 “보통 선수 출신이 금융지점으로 가면 보통 자동차 관련 직무를 받는다. 그런데 당시 천안지점에 TO가 없었다. 그래서 주택담보 담당자로 갔다”고 설명했다. 인생의 대부분은 운동에만 매진했던 백승헌에게 주택담보 직무는 절대 쉽지 않았다. 대출 규제부터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 대출 상품 판매 매뉴얼 외에도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백승헌은 “처음 한뼘만 한 두께의 매뉴얼을 받았는데, 솔직히 하얀 것은 종이고, 검은색은 글씨라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껄껄 웃었다.

현대 캐피탈 백승현의 서브 모습.

할 수 있는 업무가 없었다. 백승헌은 “아무것도 모르고, 금융 업무에 대한 기본 지식도 전혀 없는 상태였다”라며 “2009년 당시 지금 코로나19처럼 신종플루가 대유행했는데, 나의 업무는 방문객을 상대로 열 체크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주변에서 ‘선수 출신이 뭘 할 줄 알겠어’라는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다. ‘1년도 못 채우고 도망할 것’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때가 신혼이었는데, 아내 몰래 밤마다 울기도 했다”고 멋쩍게 웃었다.

 

힘든 시기를 어떻게 견뎠을까. 백승헌은 “이 일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고민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아내를 보면서 ‘그래, 뭔들 못하겠냐. 기다려봐라, 내가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여줄게’라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그놈의 승부욕이 거기서 발동하더라”라고 웃었다.

 

백승헌은 업무를 익히기 위해 오전 7시에 출근해 밤 11시 퇴근을 매일 반복했다. 주말에도 출근해 성사된 대출 서류를 다시 검토하며 익혔다. 동료들의 상담과정을 케이스별로 녹음해 잠들기 전까지 듣기도 했다. 직접 밖으로 나가 대출 홍보지를 돌리기도 했다. 백승헌은 “그렇게 2년의 세월을 보냈다. 정말 이 악물고 버텼다. 그런데 3년째가 되니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실제 입사 3년 차에 주택담보 부문 전국 1위 지점에 오르는 데 기여하는 등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입사 3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했다.

인복도 있었다. 백승헌은 “입사 이후 헤매고 있을 때 유선으로 연락이 왔다. 현대캐피탈 직원분이셨는데, 오랜 배구팬이었다. 내가 입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움을 주겠다며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다”라며 “아직도 현직에 계신다. 한 분은 이인희 서울금융지점장님이시고, 한 분은 임승현 광주지점 매니저님이시다. 업무를 익히고, 생전 처음 하는 회사 생활에 적응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평생의 은인이시다”라고 전했다.

 

아내의 희생도 백승헌이 금융맨 변신에 성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백승헌은 “결혼과 동시에 현대캐피탈 금융지점에 입사했다. 2년 동안 주말도 없이 일에만 몰두했는데, 그걸 옆에서 지켜줬다. 사회생활 경험이 있어서 조언도 많이 해줬다. 8살배기 아들-딸 쌍둥이 육아도 도맡아 해줬다”라며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파란만장한 적응기를 거친 백승헌은 이제 어엿한 11년 차 주택담보대출 부문 금융맨으로 성장했다. 백승헌은 “돈이 오가는 일이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기본적으로 억 단위가 오간다. 대출 규제에 대한 이해도도 깊어야 하고, 부동산 법도 알아야 한다. 정부 부동산 대책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라면서도 “잡히지 않을 것 같았던 일들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니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금융 업무를 하면서 정말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온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10년 전 선택에 후회는 없다.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미소 지었다.

 

young070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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