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전영민 기자] “KIA 타이거즈 선수로서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1월 스프링캠프 출국을 위해 KIA 선수단이 인천공항에 모였을 때 일이다. 양현종, 최형우 김선빈, 이창진, 문경찬 등 지난해 좋은 활약을 남긴 선수들이 줄줄이 인터뷰를 하는 사이 나지완(35)은 멀찍이 떨어져 후배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선수단이 입국장을 떠나기까지 약 두 시간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보냈다. 이를 지켜본 구단 한 관계자는 “예전 같았으면 (나)지완이가 (양)현종이 다음 순번이었을텐데 세월이 참 많이 흐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나지완이 타이거즈 최다 홈런을 경신했다. 19일 광주 롯데전서 서준원을 상대로 3점포를 신고하면서 통산 207호째를 기록했다. 3루 베이스를 돌면서 특유의 세리머니를 펼치는 순간에도 굳은 표정이었지만 역사는 바뀌었다. 해태 시절 김성한이 홀로 품고 있던 타이거즈 역사상 최다 홈런 기록에 나지완이 이름을 함께 올린 것이다. 나지완이 한 차례만 더 담장 밖으로 타구를 넘기면 타이거즈 홈런 기록도 리셋이다.
최다홈런 신기록을 앞둔 주인공이 나지완이어서 다행이다. 돌이켜보면 구단의 영광을 이끌었던 나지완에게는 항상 쓴소리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여느 홈런타자들이 그렇듯 찬스에서 가장 큰 기대를 받았다. 찬스 상황에 대타로 나서도 안타나 홈런을 쳐야만 본전이고 그 이하는 바로 악성 댓글행이다. 찬스를 놓치는 순간부터는 신체 밸런스와 근육으로 다져진 몸은 한순간에 ‘운동선수답지 않은 몸’으로 비하됐다. 지난해 공인구 반발 계수 조정으로 인해 모든 홈런 타자들이 부진할 때에도 나지완은 ‘은퇴하라’라는 비난까지 받아내야 했다. 항상 비난을 감수해오던 나지완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그래도 나지완은 묵묵히 버텼다. 최다 홈런 타이기록은 그래서 더 대단한 영예다. 나지완이 구단 역대 최고 타자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타이거즈 프랜차이즈로서 보낸 13년의 헌신이 기록화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지완은 정말 꾸준했다. 2009년부터 6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쳤고, 2016시즌부터는 3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두 차례 우승도 경험했고, 짜릿한 끝내기 홈런으로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기기도 했다. 장타자가 없어 고전할 것이라는 2020시즌 타이거즈 중심타선에서도 나지완은 정중앙에 서있다.
인천공항 한쪽 구석에 서있던 나지완의 무표정 뒤에는 어떤 감정이 숨겨져 있었을까. 대기록 작성 직후 “200홈런을 쳤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16연패 때도 현장에 있었고, 두 번의 우승 현장에서도 자리에 있었다. 이렇게 기록에 남겨질 수 있다는 게, 잘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나지완의 소감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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