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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기생충’은 어떻게 아카데미를 사로잡았나

입력 : 2020-01-20 09:11:08 수정 : 2020-01-20 1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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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2회 아카데미상 노미네이션에서 한국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에 대해선 지난 한 주간 이미 수없이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기생충’이 대체 ‘어떻게’ 이 정도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해석이 잘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일단 가장 간편한 해석, 즉 “작품이 좋기 때문”만으로 그렇게 되진 않는단 점부터 짚고 넘어가자. 세계 최대 영화시장의 세계 최대 홍보탑 아카데미상은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금은 클래식 반열에 올라선 걸작들도 수없이 내쳐온 역사가 있다. 봉준호 감독 말마따나 근본적으론 “로컬” 영화상이니만큼 비영어권 국가의 비영어 영화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지명되는 영화들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최소한도 경향성 정도는 충분히 확인된다. 크게 세 가지 요인 정도를 들 수 있다. 전반적 공통점 하나와 그중 ‘외국어영화’들이 지녔던 공통점 둘. 전제는, 어찌 됐건 비평적으론 호의적 반응을 얻어낸 ‘웰-메이드 영화’란 점이 될 것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아카데미상은 흥행실패작을 작품상 후보로 올려놓는 일을 상당히 꺼린다. 최소한도 체면치레 흥행 정돈해줘야 그나마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카데미상 자체가 대중성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란 점도 있지만, 사실 비즈니스적 차원이 더 크다. 아카데미상은 결국 방영판권을 TV 등 방송사에 팔아 재원을 얻어내는 구조다. 그런데 여기서 아무도 안 본 아트하우스 영화 중심으로 작품상 후보가 선정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대중-시청자들 관심도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시청률이 떨어지면 방영판권도 가격이 추락하게 된다. 방영가치 자체가 의심받는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그럼 아카데미상도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대중적 인지도 높은 흥행성공작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기생충’은 여기서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이미 북미흥행수익 2500만 달러를 넘어선 상태다. 다른 할리우드 영화들에 비해 많이 번 건 아니지만, 소위 ‘볼 만큼은 본’ 수치다. 최소 조건을 일단 맞춰줬다. 특히 자막 읽기 싫어하는 미국시장에서 비영어 영화란 페널티를 안고서도 거기까지 흥행이 가능했단 점에서 남다른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통과’됐다. 여기서 통과되지 못해 아카데미상 진출이 막혀버린 뛰어난 영화들도 많다.

 

 그 다음, 외국어영화 입장에서 얻을 수 있었던 어드밴티지 부분. 지난해 칸영화제 개막 직전 세계 3대 영화제 ‘무용론’이 잠시 펼쳐진 바 있다. “바로 지난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뭔지는 알고 있느냐”는 반문으로 시작됐다. 그저 관심 있는 소수에게나 중요한 상일 뿐 그게 대중적, 혹은 산업적 차원에서 무슨 전환점이 돼주진 못한단 설명이었다. 물론 그 자체론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거기서’ 모든 게 다 끝나는 것도 아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비영어 영화 6편을 보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2편, 2등 격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1편, 그리고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1편이다. 어쨌든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은 분명 도움이 된단 얘기다. 모든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작이 아카데미상으로 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카데미상 ‘구미’에 맞는 영화일 경우 그 수상 타이틀은 ‘권위의 추진기’ 역할을 해 유리한 입지에 서게 해준다는 것.

 

 ‘기생충’은 여기서 일단 프리미엄이 생겼다고 봐야 한다. 그 ‘권위’로서 추진력을 얻어 미국 입성 시 비평계 주목을 이끌어낼 최상의 포지션을 차지했다. 거기서부터 영화 자체의 대중적 성향이 미국영화계 ‘구미’에 맞아떨어져 호평 퍼레이드를 얻게 됐고, 전폭적 비평계 지원 덕택에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었단 순서다.

 

 이제 마지막, ‘감독=작가’의 미국영화계 지명도 프리미엄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지난 사반세기 동안 작품상 후보에 오른 외국어영화 6편을 보자. 그중 4편은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영어영화(최소 영어 대사가 절반은 되는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다. 이안은 ‘와호장룡’ 이전 ‘센스, 센서빌리티’ 등 3편을, 미카엘 하네케는 ‘아무르’ 이전 ‘퍼니게임’ 미국판을 만든 바 있고, 봉준호 역시 ‘설국열차’와 ‘옥자’를 미국시장에 내놓았었다.

 

 다른 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는 배우로서 이미 미국영화에 출연해온 인물이었다. ‘핑크팬더’ 프랜차이즈 마지막 편 ‘핑크팬더의 아들’에선 주연까지 맡았다. 거기서 얻은 인지도 덕택에 이탈리아영화 ‘미스타 몬스터’가 미국서 개봉할 땐 NBC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도 초대된 바 있다. 모두 ‘인생은 아름다워’ 이전 얘기다. 한편 1996년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이탈리아영화 ‘일 포스티노’는 특이하게도 영국감독 마이클 래드포드가 만든 영화였다. 미국과 일정 부분 연동되는 영어권인 만큼 래드포드 역시 ‘1984’ ‘다이애나의 두 남자’ 등으로 미국영화계에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였다.

 

 결국 미국영화계에서도 어느 정도 친숙한 감독, 특히 미국영화계와 인연을 맺어본 감독 영화들이 비영어 영화 한계를 뚫고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지명까지 갈 수 있단 얘기다. 봉준호 감독은 여기서도 통과됐다. 바로 직전 영화 2편이 모두 미국시장에 안착한 영어영화였단 점에서 ‘연속성’ 차원 프리미엄도 얻었다.

 

 특히 마지막 ‘화룡점정’ 요소, 미국영화계 지명도 차원 문제는 여러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국감독들 중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어본 감독은 봉준호만이 아니다. 박찬욱 감독도 미국서 ‘스토커’를 만들어봤고, 김지운 감독 역시 ‘라스트 스탠드’를 찍어봤다. 모두 미국영화계 입장에선 ‘남’이 아니다. ‘로컬’ 영화상에선 그런 점도 당연히 중요하다. 그만큼 이들의 비영어 영화들 역시, 아카데미상 ‘구미’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면, 환영받을 여지가 많다.

 

 끝으로, 아카데미상이 뭐가 그리 중요하기에 이 난리법석이고 전략까지 연구해야 하느냐는 입장에 대해서다. 쉽게, 그럼 방탄소년단의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는 왜 그렇게 중요할까. 세계대중문화 메카 미국은 그 위상만큼이나 전 세계 대중문화 ‘트렌드 세터’ 기능을 갖고 있어서다. 미국서 주목받고 성공을 거두면 단순히 거기서 끝나질 않는다. 거기서 ‘트렌드’를 감지한 세계 수많은 국가로 흐름이 번져나간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1위 이후 유럽 등지 시장을 훨씬 고조시키고, 나아가 K팝이 ‘먹히는 영역’ 자체를 대폭 확대했듯이 말이다.

 

 당장 ‘기생충’ 일본성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은 2010년대 들어 ‘부산행’ ‘베테랑’ 등 될성부른 한국영화들이 수없이 시장을 두드렸어도 모두 주간흥행 10위 내에도 못 들 만큼 완강한 시장이었다. 그러나 ‘기생충’이 미국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단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화마니아층이 일거에 몰려들어 지난 주말흥행 5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 아카데미상 주요부문 노미네이션까지 이뤄진 상태니 상황은 점점 더 유리해질 것이다.

 

 이런 게 미국시장 진출 성공 위력이고, 그에 방점을 찍어주는 아카데미상 위력이다. ‘안 되던’ 시장까지 자연스럽게 돌파시켜준다. 당연히 염두에 두고 전략을 세워봐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기생충’은 이미 거창한 테스트베드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이제 ‘기생충 이후’를 고심해봐야 할 때다.

<스포츠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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