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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숙환으로 별세… ‘수송보국’에 인생 바쳐

입력 : 2019-04-08 10:41:02 수정 : 2019-04-08 10: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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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전경우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하늘로 돌아갔다. 향년 70세. 유족으로는 부인 이명희(전 일우재단 이사장∙70)씨를 비롯 아들 조원태(대한항공 사장∙44)씨, 딸 조현아(전 대한항공 부사장∙45)∙조현민(전 대한항공 전무∙36)씨 등 1남 2녀와 손자 5명이 있다. 장례절차는 미국 현지에 있는 가족들이 논의 중이다. 

 

조 회장은 1949년 3월 8일 인천광역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조 회장은 재직기간 중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 회장은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을 주도하며 글로벌 항공업계 무한 경쟁의 선봉에 섰다. 전 세계 항공사들이 경영 위기로 움츠릴 때는 앞을 내다본 선제적 투자로 맞섰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 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으며, 1998년 외환 위기가 정점일 당시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또한 이라크 전쟁, SARS 뿐만 아니라 9.11 테러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 조 회장은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결국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고 2008년 7월 진에어를 창립했다. 진에어는 저비용 신규 수요를 창출, 대한민국 항공시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 회장은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고심했다. 2010년대 미국 항공사들과 일본 항공사들의 잇따른 조인트 벤처로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중요한 수익창출 기반인 환승 경쟁력이 떨어지자, 조 회장은 델타항공과의 조인트 벤처 추진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조 회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외교관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데도 힘을 쏟았다. 조 회장은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조 회장은 몽골로부터는 2005년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기도 했다. 

 

조회장은 체육분야에서도 큰 별이었다. 1970년 미국 유학 중 군에 입대해 강원도 화천 소재 육군 제 7사단 비무장지대에서 복무한 조회장은 베트남에도 파병돼 11개월 동안 퀴논에서 근무한 후 다시 강원도 비무장지대로 돌아와 육군 병장으로 36개월 만기 전역했다. 이때 경험은 조 회장이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에 대해 눈 뜨는 계기가 됐다.

 

조 회장의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은 대한민국의 염원이었던 동계올림픽 유치와 개최로 이어졌다. 조 회장은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았다.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 10개월간 조 회장은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했다. 그 동안 IOC 위원 110명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조 회장은 2014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라는 중책까지 맡아 평창동계올림픽을 본 궤도에 올렸다. 정부의 사퇴 압력을 받고 2016년 5월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조회장은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만사가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조회장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에 빠진 한진해운을 살려보려 노력했지만 회사는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 과정을 밟으며 육해공의 한 축이 무너졌다. 가족들과 관련된 잡음도 끊임 없이 조회장을 어렵게 했다. 올해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것도 큰 충격이었다.

 

올해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가 166대로 증가했으며, 일본 3개 도시 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이와 같은 도전과 역경, 성취와 도약의 역사가 담긴 대한항공의 여정에는 조 회장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 있다. kwjun@sportsworldi.com 

 

사진설명

 

1.대한항공 본사 격납고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양호 회장.

 

2.조양호 회장은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해 국내 항공업계의 위상을 끌어 올렸다. 

 

3.델타항공과 손잡은 조인트 벤처는 인천공항의 환승 경쟁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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