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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인터뷰] 이준규 에버랜드 식물콘텐츠 그룹장, “나무는 또다른 나와 같은 존재”

입력 : 2019-04-05 03:00:00 수정 : 2019-04-04 19: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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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글·사진 전경우 기자] 에버랜드의 출발은 나무 심기였다. 1976년 용인자연농원 개장 무렵 놀이시설의 면적은 20만평에 불과했다. 1971년 삼성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용인 포곡면 전대리 일대 450만평 야산을 사들였다. 200만평은 조림단지로 가꿨고 160만평에는 각종 유실수를 심었다. 방치된 야산을 개발해 부족한 식량과 산림자원을 생산할 목적이 먼저였다.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인구가 해마다 줄고 있지만, 에버랜드는 나무 심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올해 봄에는 매화 정원도 새로 선보였다. 가녀린 묘목이 아름드리나무가 되는 세월, 사람도 함께 자랐다. ‘정원의 야전 사령관’ 이준규 에버랜드 식물콘텐츠그룹장에게 ‘나무와 닮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특이한 직업을 가졌다. 본인 소개를 해달라.

“현재 국내 최대 테마파크인 에버랜드에서 꽃축제, 식물교육, 수목관리, 장미육종 등 식물에 관련된 모든 일을 총괄한다. 2002년 에버랜드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조경 디자이너로 10년간 근무했고, 개인 주택에서부터 대형 국책사업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후 2011년 유학을 떠나 영국 에식스대학교 위틀스쿨오브디자인에서 정원디자인 석사와 조경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16년 복귀했다.”

-‘식물콘텐츠그룹’은 어떤 조직인가.

“현재 내가 맡은 식물콘텐츠그룹은 원예, 조경, 산림 등의 전문가 15명이 있는데, 국내 최고 식물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원계의 어벤저스’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저희를 ‘꽃벤져스’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식물과 정원에 관해서는 국내에서 가장 훌륭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그린썸(Green Thumb 원예에 재주가 있는, 식물을 잘 기르는 사람)들이다.”

-어떤 차별점과 기술적 우위를 갖고 있나.

“에버랜드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조경’이라고 하지 않고, ‘정원’이라고 표현한다. 조경은 ‘소설’이고, 정원은 ‘시’라고 생각한다. ‘조경’은 불특정 다수가 주인이 되는 공간이라 자세한 ‘설계적 설명’이 필요하다. 작가의 감성과 서술, 의도에 따라 이용자는 공간을 이용한다. 하지만 ‘정원’은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과 해석이 가능하다. 에버랜드의 식물 연출은 바로 이 차별성에 주목한다. 방문객 모두가 자기의 정원처럼 다양한 상상을 하고,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정원이다.”

-너무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지난 2017년 정원에 있는 담장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꽃과 사람을 분리하는 관리적이 측면만 고려한 공간 형태를 새롭게 바꾸기 시작했다.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라는 책에 나온 ‘꽃도 사람이 있어야 꽃이다’라는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작업했다. 꽃이 상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였다. 고객들은 펜스가 없어지니 오히려 조심해서 가까이 접근하며 꽃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나무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서로 무엇을 주고받았는가.

“나무는 또 다른 나와 같은 존재다. 어린 시절 몸이 매우 아파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친구들과 골목을 뛰어놀던 기억도 거의 없다. 항상 집안에 누워있어야 했던 나에게 유일한 말벗은 마당에 심겨있던 라일락 나무였다. 가끔 나무에 올라가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라일락 잎의 쓴맛을 보기도 하고, 꽃향기에 취하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15년 가까이 보내고 나니 라일락이 그냥 내가 되더라. 나무가 느끼는 것을 나도 느낄 수 있었고, 내가 느끼는 것을 나무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았다.”

-나무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싶은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동물 분야는 수의사나 사육사 등의 명확한 직업군이 있으나, 식물과 관련된 직업군을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오히려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기회가 많다는 장점이 보인다. 우리 생활에서 식물이 들어가지 않은 분야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직접 식물과 관련 있는 직업은 정원디자이너나 정원사, 원예가, 조경가 등이 있다. 먼저 나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공부하는 게 필요하고, 현장에서의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 손에 흙을 묻혀보지 않고서는 이 업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 없다. 정원에 심어진 식물들은 정원사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다.”

kwju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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