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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아이돌시장, 더이상 ‘그사세’ 아닌 이유

입력 : 2019-01-20 14:38:49 수정 : 2019-01-20 14:5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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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걸그룹 명가’ JYP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차기 걸그룹 진행 상황을 밝혔다. 이미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다 마쳤단 보고다. 데뷔가 사실상 한두 달여 내 이뤄지리란 얘기다. 한편 19일부로 JYP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Fan's’ 코너에도 새 걸그룹 카테고리가 생겼다. 그러면서 새 걸그룹명도 사실상 확정되다시피 했다. ‘ITZY’다.

 

그런데 대체 이를 어떻게 읽어야할까. 현재까지도 아이돌 팬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에 JYP 걸그룹명은 늘 원더걸스, 미쓰에이, 트와이스 등 한글로 4글자였다는 점을 감안, 현재로선 ‘아이티지’로 읽으리란 예상이 지배적이긴 하다. 그대로라면 참 읽기 힘든 이름이다. 그런데 결국 어떤 식으로 읽건 이처럼 갑론을박이 벌어질 만한 이름으로 결정됐단 점 자체가 중요하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

소위 ‘읽기 힘든 걸그룹명’은 근 1년 새 일종의 트렌드가 돼가고 있다. 일단 최대 무리수 그룹명으로 불리는 (여자)아이들이 있다. 저게 공식표기지만 괄호 안 ‘여자’는 묵음이고 그냥 ‘아이들’이라 읽는다. 영어로도 (G)I-DLE이라 쓰고, 같은 맥락에서 ‘G’는 안 읽는단 원칙이다. 다른 걸그룹들도 영어표기로 들어가면 이 같은 ‘읽기 장벽’을 일부러 설정해둔다. 프로미스나인은 FROMIS_9이라 쓴다. 이에 해외에선 ‘프로미스 언더바 나인’이라 읽는 이들도 많다. 한편 아이즈원 영어표기는 IZ*ONE이다. 그 자체로도 ‘아이존’ ‘이즈원’ 등 읽는 법이 헷갈리고, 저 별표까지 포함한 게 공식표기다. 이밖에도 많다.

물론 이런 식 ‘읽기 힘든 걸그룹명’도 지금이 처음은 아니다. 특히 영어표기 면에선 그랬다. 예컨대 ‘2NE1’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당시엔 일종의 ‘장난’으로서 간간히 저런 표기를 택했다면, 지금은 전반적 분위기가 그렇다. 일종의 ‘전략’으로서 읽힌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 전략이 과연 무엇인지도 어렵지 않게 읽힌다.

 

이런 장벽들은 근본적으로 팬덤 전략이다. 읽기 힘들고 복잡하며 오해를 살 만한 이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부터가 팬으로서 소속감과 결속력을 높여준다. 굳이 말하자면 그루초 막스의 ‘가입하기 까다로운 클럽’ 논리다. “나를 쉽게 가입시켜주는 클럽 따윈 가입하고 싶지도 않다”는 심리의 역행이다. 일단 그룹명부터 일반대중은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팀이니 그 장벽을 넘어선 시점부터 애착도는 그만큼 올라간다. 그리고 그런 애착도는 곧 충성도로 이어지게 된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돌시장 상업논리는 지난 십 수 년 간 거의 비슷했다. ‘남돌은 팬덤, 여돌은 대중성’ 코드다. 아이돌 팬층 자체가 여성 중심으로 성립돼있는 상황에서, 남자아이돌에 유사연애심리 자극으로 진행되는 팬덤 전략은 언제나 유효했다. 반면 여자아이돌에 대한 남성 팬들 충성도는 늘 그보단 떨어졌고, 여성 팬들 동경심리 역시 늘 유사연애심리만 못했다. 그래서 여자아이돌은 팬덤보단 대중성 전략으로 나아가 행사시장 중심으로 수익을 얻어내는 방향을 택했다. 본래 행사 섭외는 대중적으로 접근성 좋은 여자아이돌 쪽이 늘 선호돼왔고, 그 행사 섭외도는 대중성과 직결되는 부분이니 각종 미디어를 총동원한 대중성 확보 전략이 곧 여자아이돌 생명줄이 돼왔다.

그런데 여기서 한류 붐을 타고 새롭게 성립된 해외 팬들은 엄밀히 저 행사시장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축이다. 그럼 대중성 중심으로 짜놓은 각종 국내 전략들도 별 필요가 없어진다. 오히려 허들을 높여 팬덤 전략을 택하는 쪽이 후일 콘서트, 굿즈 판매 등 성립에도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니 한국에선 ‘아이즈원’이되 해외에선 ‘IZ*ONE’이 된다. 바다를 건너가면 모든 게 소속감과 결속력, 애착도, 충성도 게임으로 변모한다.

 

그런데 여기서 시각을 확장시켜 보면, 사실 이 같은 변화는 비단 해외 상황만으로 그치진 않고 있다. 국내에서마저 걸그룹 자체 동력이 점차 팬덤 중심으로 이동되고 있단 인상이 강하다. 앞서 언급한 (여자)아이들만 해도 그렇다. 대중성 중심 광고홍보논리에선 한참 벗어난 네이밍이다. 지난해 드디어 완전체를 공개한 이달의소녀는 보이그룹 특색과도 같았던 복잡한 세계관 설정을 취하고 있다. 역시 팬덤 전략의 전형이다. 록 기반 음악으로 눈길을 끈 드림캐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자체로 대중성 확보 차원에서 어긋난 상태다. 그런데 이들 팀 모두 특히 팬덤 규모를 보여주는 피지컬 음반판매 면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주며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고 있다.

 

큰 의미에선 보이그룹이건 걸그룹이건 ‘아이돌’이란 상품 자체가 이미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현상에서 비롯된 변화라 볼 수 있다. 아무리 ‘대중성의 여돌’이더라도 더 이상 ‘텔 미’나 ‘지’ 시절이 아니란 얘기다. 마지막 걸그룹 국민가요라 봤자 3년 전 트와이스의 ‘치얼 업’ 정도가 끝이다. 아이돌 자체가 국민레저 중심이던 시절은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대신 ‘그들만이 사는 세상’, 즉 ‘그사세’라 불리던 팬덤은 점점 더 규모가 커져가고 있다. ‘일반대중’의 큰 유행에 아이돌이 중심에 서던 분위기에서, 점차 개개인별 ‘그사세’들이 하나둘 규모를 확장해 각자의 지분을 차지하며 ‘취향의 전국시대’를 열어가는 분위기다.

 

당연히 비단 아이돌시장만의 얘기도 아니고, 한국만의 얘기도 아니다. 인터넷 상용화 20여년, 이제 몇몇 주류미디어에서 유통권력을 휘두르며 전체 유행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각자가 취향에 따라 인터넷이란 콘텐츠 창고에서 자기들 입맛대로 ‘그사세’를 만들고 또 불려나간다. 그렇게 스몰스타 대표 격인 ‘유튜버 전성시대’가 도래했고, 세계대중문화 메카 미국선 K팝이 뜨고 일본애니메이션 ‘드래곤볼’ 극장판이 데일리 흥행 1위를 차지한다. ‘대중’으로서 뭉뚱그려지는 흐름이 끝나가면서 ‘팬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분위기다.

 

그리고 이제 ‘잇지’인지 ‘아이티지’인지 부르는 법조차 알 수 없는 ‘ITZY’까지 왔다. 그것도 아이돌 걸그룹에서, 그것도 팬덤보단 대중성 치중 전략으로 유명하던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이름이다. ‘팬덤의 시대’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모두가 같은 것을 즐기던 대중 유행의 시대에서, 같은 것을 즐기는 사람들끼리 따로 ‘그사세’를 만들며 그저 그 합계로서 ‘대중’이 나오는 시대로의 변화다. 그 변화과정을 차근히 지켜볼 만하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각 소속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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