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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제품만 넣어라"… 음료수 자판기 영업에도 '갑질'

입력 : 2018-12-18 03:00:00 수정 : 2018-12-17 18: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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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칠성, 코카콜라·동아오츠카와 달리 자사제품만 진열
롯데위주 철칙 삼아… 영업사원 “이 기준에 맞춰야 된다”
대리점 관계자 “시장점유율 높으니 당연시 되는 분위기”

[정희원 기자] 음료회사에서 이른바 ‘제2영업부대’로 불리는 자판기 사업이 갑질 영업의 온상으로 의혹을 사고 있다.

과거에 비해 설치 대수 등 규모는 줄었다고 하지만 현재 국내에 깔려있는 자판기는 25만대 수준이다. 이 중에서 캔·페트 음료 자판기가 10만대로 가장 많다. 대학가·학원가·병원·지하철 등에서도 여전히 자주 보인다.

음료 업계 ‘3대장’인 롯데칠성음료·코카콜라·동아오츠카도 자판기 운영에 신경쓰고 있다. 대부분 자판기에 각각 자사 브랜드 제품을 공개하며 마치 ‘작은 음료회사 전시장’ 같은 느낌을 준다.

음료수 자판기 업계의 거성은 단연 ‘롯데칠성’이다. 여기저기 눈에 띄는 초록빛 자판기는 ‘롯데산’이다. 롯데칠성은 국내 최다 자판기 장비수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롯데기공(롯데알루미늄 사업부)을 끼고 영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자판기 시장은 롯데기공·로벤이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롯데기공은 롯데칠성음료 등 자판기 수요가 큰 기업과 ‘멀티플레이’가 가능하다.

롯데칠성은 과거부터 ‘자판기 경영’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1977년 신격호 롯데 회장은 일본에서 자판기가 성황하는 것을 보고 이를 국내에 접목시켰다. 롯데칠성이 처음 선보인 자판기는 1979년 롯데호텔 안에 설치됐다. 당시 유통 업계에서는 ‘획기적인’ 이슈로 꼽혔다. 이후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자판기 영업을 통해 웬만한 영업사원 뺨치는 실적을 내는데다 신제품 광고효과까지 톡톡히 냈다. 오죽하면 1990년대 영업소 직원끼리 서로 자판기를 뽑아 내다버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현재 롯데칠성음료는 ‘자판기 사업의 규모를 줄인다’고 주장하지만 제품 판매확대 채널로 자판기를 이용하는 것은 여전하다. 자판기 대수를 줄일지언정, 이 안에서 판매되는 음료수의 양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

이렇다보니 롯데칠성음료는 코카콜라·동아오츠카에 비해 철저한 ‘자사제품 유일(?)’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이런 행보는 약 2년 전부터 시작됐다. 자판기를 위탁운영하는 개인사업자나 자판기 도매업자들로서는 다소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롯데칠성은 최근 도매업자들에게 ‘자판기 장비를 지원해줄테니 롯데칠성음료 좀 많이 쓰라’고 은연중에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자판기를 사용하는 업체는 롯데칠성음료에 매월 일정 비용을 결제해야 하는 만큼 결국 ‘롯데 위주’의 음료를 채우게 된다. 선발기업이다보니 탄산음료, 생수, 주스, 커피 등 대다수 제품을 구비하고 있어 ‘그러려니’ 하고 채우는 사람도 적잖다. 업계에 따르면 보통 자판기 한 대당 30∼50만원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서울 노원구에서 자판기 위탁운영을 하고 있는 자영업자 A모씨(36)는 “롯데칠성음료에서 자판기 한대를 임대해서 부업을 하고 있고, 모든 음료는 롯데에서 매월 35만원 수준을 주문하고 있다”며 “그런데 요즘따라 배달해주는 영업사원이 자꾸 주문을 더 늘리라며 재촉하는 느낌, 갑질하려는 느낌이 들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과거에는 롯데칠성음료도 자사 자판기 내에 다양한 브랜드를 두루두루 두며 상생하고 있었다. 도매점 사장들도 납품받는 중소기업 제품들을 함께 자판기에 채웠다. 하지만 근래 롯데가 ‘롯데위주’ 철칙을 강화하며 결국 롯데칠성음료만 자판기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음료대리점 관계자는 “기업 영업사원들은 ‘사장님이 이 기준에 맞춰주셔야 합니다’고 말하고, 대리점 사장이나 점포 사장들도 기계 자체가 롯데가 제공한 것이니 본인들 기준대로 하라고 지시해도 딱히 할 말은 없는 게 사실”이라며 “이런 기준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업체 자판기를 쓰면 되는데 사실상 롯데칠성음료의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으니 뭔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당하다라는 느낌보다도 이미 그렇게 길들여졌다”고도 했다.

롯데칠성음료 자판기에서 퇴출된 중소기업 제품을 영업하는 이들의 매출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부 대리점 사장들은 영업사원의 애환을 알아주면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몰래 끼워파는 일화도 적잖다. 롯데칠성 측에서 점검 나올때만 타사 제품을 빼는 식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장비에 타사제품이 있을 시 1차 적발시 경고에 들어가고, 2차 시 철수하는 게 보통이다. 다만 장비를 수시로 점검하다보니 기계상태가 잔고장 없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장점이다.

다른 브랜드들은 어떨까. 업계 관계자는 “다른 브랜드들도 물론 자사 제품만 채우는 사례가 있지만 그래도 다른 제품들을 함께 내놓고, 대리점 사장의 의지를 존중하고 있다”며 “코카콜라나 동아오츠카는 장비 대여는 단순 대여에서 끝나는데 롯데칠성음료의 경우 대여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매출 푸쉬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 한 대학가에 설치된 롯데칠성음료·동아오츠카·코카콜라 자판기에는 3사의 제품이 고루 담겨 있었다. 대학 관계자는 “교내에 3사 자판기가 모두 들어오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생활협동조합에서 모든 음료를 계약하는 조건으로 들어오도록 해서 롯데 측도 현재는 이를 따르고 있다”며 “다만 다른 학교에서는 롯데칠성음료의 경우 자사 브랜드만 채운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수도권에서 음료영업직에 종사하고 있는 업계 관계자는 “롯데칠성음료의 이런 영업원칙이 판매장려형식인지 자판기임대업을 매출로 포장 하는 것인지는 회사 임원들만 알 것”이라며 “자기 회사 기계에 자사 제품만 넣으라고 하는 데 딱히 반박할 수는 없지만, 롯데가 말하는 상생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롯데칠성음료 쪽은 자판기를 ‘제품 밀어넣기’ 수단으로 절대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다른 음료회사들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자사 제품 위주로 자판기를 구성하는 게 당연할 것”이라며 “간혹 제품 구성이 부족한 회사들은 다른 회사의 음료수도 함께 채우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롯데칠성음료의 경우 웬만한 음료군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브랜드를 쓰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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