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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1-27 03:00:00, 수정 2018-11-26 18:25:37

    오너 취미=필수 체험… '갑질 기업문화' 만연

    혁신·감성경영 등 각종 이유 내세워
    직원 대상 일방통행식 프로그램 강요
    권력 영향… “싫다” 적극적 표현 못해
    개인 가치 중시… 자발적 참여 필요
    • [정희원 기자] “좋아서 하냐고요? 글쎄요. 상사 분 취미라니 맞춰드려야지 도리가 있나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려면 일은 기본이고 ‘과외업무’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명제가 깔려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는 단순 회식에서 ‘으쌰으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인사고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상사나 오너의 취미에 함께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취미생활에 함께 하자는 것을 ‘경영문화’로 포장하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신조어, Work-life balance의 약자)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젊은이들은 이런 분위기에 ‘숨 좀 쉬자’며 은연 중에 “노(NO)”를 외치고 있다. 싫어하는 것을 존중해달라는 이른바 ‘싫존주의’가 퍼지는 것도 한몫한다. 이들은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숨겨왔던 불호(不好)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인정받으려 한다.

      다만 아직까지 대놓고 상사에게 ‘나는 이러이러한 게 싫으니 참가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은 드문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의사를 밝히더라도, 싫존주의 세대가 말하는 ‘싫음’의 의미는 상대 권력이 높을 때 쉽게 무시되고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결국 당사자는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거나, 결국 ‘중이 절을 떠나는’ 사태가 벌어진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 모씨(32)는 부장의 ‘몸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원됐다. 체육대학을 졸업해 헬스트레이너로 근무한 적 있는 그는 요즘 헬스에 빠져있는 부장의 퍼스널트레이너가 된 듯한 기분이다. 점심 시간 웨이트트레이닝 파트너가 돼주는 것은 물론이고 퇴근 후나 심지어 주말에도 “박 대리, 단백질보충제 지금 챙겨 먹어도 되나?” 같은 카톡을 받아 스트레스를 토로한다.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 씨(29)는 상사의 취미가 ‘술’이다보니, 입사 1년간 상사의 술자리 뒤치다꺼리에 나서야 했다. 거의 매일 새벽 2시에 들어가는 생활이 반복되는 바람에 상사에게 “당분간 술은 자제하고 싶다”고 호소했으나, 도리어 “섭섭하다”는 호통 섞인 반응을 접했고 이젠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오너의 취향을 ‘기업문화’로 포장할 수 있는 기업도 만만찮다. 과거 SK네트웍스의 해병대 병영훈련, 대보그룹·KT의 등산 극기훈련, KB국민은행의 신입사원 대상 100㎞ 행군 프로그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회사는 ‘도전정신 함양’을 이유로 연례행사처럼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지만 일시적인 연례행사뿐 아니라 거의 항상 오너 취미에 맞춰야 하는 사례도 있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의 ‘아트경영’이 여기에 해당한다. 윤 회장은 “제과시장에서 예술을 바탕으로 돌파구를 삼겠다”며 이를 선언했다. 반면 직원 중에는 “아트경영 이후 과외업무에 동원되느라 일할 시간도 없다”고 호소하는 숫자가 적잖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신입사원부터 임원급에 이르기까지 모두 등산·국악·눈조각 등에 나서야 한다. 모두 윤 회장의 취미로 알려진 것들이다. 회사 등에서 직접 내색하지 않지만 기업 평가를 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아트경영 좀 그만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아트경영 프로그램으로는 ‘국악’이 있다. 우선, 신입사원들은 송추연수원에서 국악을 배워 조를 나눠 마지막 날 공연에 나선다. 9일 동안 매일 2시간 가까이 교육받고 조별로 민요, 아리랑, 판소리 등을 선보인다. 국악교육은 신입사원 연수에서 끝나지 않는다. 회사가 주관하는 다양한 국악공연을 관람하고 직급에 따라 명인에게 판소리, 시조 등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후 10월 창신제에서 일정 직급 이상 직원들은 점주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공연에 나서기도 한다.

      크라운해태제과 임직원 교육에서 전통악기를 가르쳤던 한 국악교사는 “한 임원은 일에 치이면서도 1주일에 한번씩 국악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아무래도 실력 향상보다는 출석도장을 찍는 데 의의를 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귀뜸했다.

      국악을 배우느라 바쁜 와중에 매년 여름·겨울에는 ‘눈조각’에도 참가해야 한다. 한 동종 업계 종사자는 “해태제과에 재직했던 지인이 겨울이면 눈조각에 동원된다고 들었다”며 “툴툴거리며 ‘눈조각 하러 간다’던 불만어린 연락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기업정보 플랫폼에서는 더 적나라한 불만을 확인할 수 있다. 잡플래닛에서 한 익명 평가자는 크라운해태제과의 아트경영에 대해 “R&D 등 뭘 제안해도 돈이 없다는 말을 듣는데, 유독 회장님의 아트경영에는 매년 수 천에서 수 억원을 쓰지 않느냐”며 “회장님의 취미생활에 직원들을 동원하지 말고 자발적인 예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크라운해태 측은 “전혀 사실과 다른 이야기”라고 못박았다. R&D 비용 자체가 동종업계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소성수 홍보팀장은 “이런 불만을 올린 사람은 생산관리직원인데 이 분야에서는 R&D 예산을 요구할 일이 없다”며 “만약 아트경영에 수 억원을 들인다 해도 이는 정당한 마케팅이자 영업활동”이라고 말했다.

      특히 소성수 팀장은 “아트경영의 긍정적인 면은 전혀 조명되지 않고, 억지로 하는 일로 치부되는 게 속상하고 답답하다”며 “직원들을 주말까지 반납하게 하고 행사에 매달리게 한 것은 절대 없었던 일로 와전된 것이며, 오히려 아트경영으로 국악 발전에 기여하고 서울시와 시민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으로서 측면을 간과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는 또 ”국악이나 눈조각 프로그램은 과외시간이 아닌 정상적인 평일 업무·일과시간에 진행한 사내 행사였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임직원들에게는 특근수당을 정확히 지급하고 휴일에 행사가 있으면 대휴 처리를 해주는 등 보상도 시행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나오는 불만사항들은 해결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현직 직원들은 이런 프로그램들이 ‘단순한 일정’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입을 모은다. 전직 직원 A모씨는 “아트경영도 좋지만, 내가 관심 있는, 취향에 맞는 ‘아트’를 존중해야지, 일괄적으로 강요된 오너 취향의 국악만 하는 것은 실질적인 아트경영이 아니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크라운해태 관계자는 “회사문화에 100% 불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업 오너들은 혁신, 감성경영, 정신무장, 도전정신 등 각종 이유를 대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지만 결국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일률적인’ 행사는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 취업 정보 전문가는 “기업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일방통행식 사내문화·극기훈련 프로그램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자율적·창의적인 기업문화와 역행할 수 있다”며 “시대적 흐름과 개인의 가치추구 변화 등을 간과하지말고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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