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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기자가 뛴다] 보이지 않는 헌신, 'SK 육성야구' 신화를 만든다

입력 : 2018-07-28 08:43:33 수정 : 2018-07-28 08: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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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강화 정세영 기자] 화려한 프로야구 선수들 뒤엔 수많은 이들의 땀과 희생이 존재한다. 함께 굵은 땀방울을 흘리지만 ‘무명(無名)’인 사람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찾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전력 분석원’의 하루를 인천 강화 SK 퓨처스파크에서 체험했다.

#전력분석원은 무슨 일을 하나요?

각 구단 전력분석원은 경기 상황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경기의 흐름과 상대의 패턴을 파악한다. 특히 상대 배터리의 투구 패턴 분석 및 사인을 캐치한다. 과거에는 단순 ‘정보전달자’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코칭스태프에 의견을 제시하고 훈련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정도로 영역이 크게 확장됐다. 

퓨처스파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마중을 나온 김상만 2군 전력분석 매니저는 대뜸 “컴퓨터 잘 다루세요? 좀 만만치 않은데”라고 묻는다. 곧바로 하루 일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오전 8시20분 코칭스태프 미팅으로 시작해 대략 오후 7시에 끝난다고 했다.

#카메라만 7대, 2군도 ‘현미경 야구’

“말로 백 번 설명하는 것 보다 한 번 만져보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곧바로 퓨처스파크로 향했다. 구단 사무실과의 거리는 빠른 걸음으로 약 3분 정도. 그라운드 바로 뒤에 자리한 전력분석실, 대형 모니터가 있었다. 모니터에는 총 7대의 카메라 영상이 비춰졌다. 여기에 투수와 야수들의 기록을 관리하는 각종 전자장비가 설치돼 있었다. 1군 전력 분석실과 다르지 않다. 구단이 장비에 투입한 돈은 무려 2억원 이상이다.

“1군은 성적이 중요한 곳이에요. 하지만 2군은 선수 육성과 기본기, 그리고 선수들의 장점을 살리는 게 중요합니다. 이곳에서는 성적보다 분석입니다. 업무는 대부분 비디오 분석과 관련돼 있습니다.”

#상무 박민호를 만나다

퓨처스리그 SK-상무전을 약 1시간를 앞두고였다. ‘똑똑똑.’ 2016시즌까지 SK에서 뛰다 상무에 입대한 박민호가 전력분석실을 찾았다. 박민호는 “지난 번 던질 때 동작을 보고 싶다“고 했다. SK는 상무나 경찰청 소속의 구단 선수도 영상을 찍어 관리한다. 김 매니저는 박민호가 원한 영상을 바로 찾아냈다. 한 동안 피칭 모습을 세심히 들여다본 박민호는 묘한 미소와 함께 “아, 이거였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물으니 “영입 비밀”이라며 웃는다.

#야구인의 로망, 스피드건을 잡아보다

“원정에서는 어떻게 하는 지 궁금하죠? 위로 올라갑시다.” 홈구장에서는 잘 준비된 영상 시스템을 활용하면 된다. 그러나 원정경기는 다르다. 여건이 열악하다. 관중석으로 올라갔다. 영상 장비를 모두 챙겨갈 수는 없다. 가장 기본적인 스피드건과 미니카메라를 설치했다. 곧이어 스피드건에 찍힌 초속과 종속의 차이 등 설명이 이어졌다. 뜨거운 날씨, 약 10분 동안의 친절한 설명에도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꼬박 3시간 이상을 보내는 전력분석원. 무엇보다. 이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도 못한다.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짜 분석은 경기가 끝난 뒤부터

야구는 복잡하다. 기본적인 마킹은 쉽게 따라했는데, 각종 상황이 벌어지면 낯설었다. 갈팡질팡, 결국 잡은 마킹펜을 김 매니저에게 넘겼다. 이날 경기는 SK가 9-6으로 이겼다. 백재호 코치가 3루수 임석진과 함께 전력분석실을 찾았다. 임석진은 2회 홈런포를 포함해 4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을 올렸다. 백 코치와 김 매니저가 홈런 영상을 틀어놓고,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김 매니저는 “엎어 치는 스윙도 많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임석진과 백 코치는 영상을 수십번 돌려봤다. 임석진은 “앱에 영상을 다운 받아 계속 보겠다”고 약속했다.

#예? 야구 게임이요?

오후 5시,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김 매니저는 “이제 게임 하러 갑시다”라며 웃는다. 김 매니저가 말한 게임은 ‘MLB 더쇼 2018’이었다. 야구게임을 통해 경기 상황의 대응능력을 키우자는 취지다. 대응력이 약한 20대 초반 어린 선수들이 타깃이다. 전력분석원과 코칭스태프가 선수와 맞대결을 펼친다. 선수단 숙소 3층. 이날 상무전에 선발 투수로 나선 조성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와 조성훈이 게임을 시작했고 제춘모 코치가 이날 경기 상황과 비슷한 장면이 나올 때면, 기다렸다는 듯 부족한 부분을 꼬집어냈다.

#이제 퇴근합시다

오후 7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사무실로 돌아온 김 매니저는 “오늘 체험은 아주 일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전력분석은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기 힘들다. 당연히 자긍심이 필요한 일이다. “쉬울 것 같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루가 정말 정신없이 돌아가요. 선수가 우리의 도움을 얻어 단점을 고치고 반전할 때는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라운드 안팎에서 최선을 다한지만 팬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의 마음은 항상 불편했다. 그래서 땀 흘리는 ‘무명’의 그들과 고충을 생생하게 전해보자고 생각했다. 이것이 이번 ‘현장체험’의 취지였다. 인천 강화에 가기 위해 당일 오전 새벽 같이 길을 나섰을 때만 해도, ‘괜히 일정을 잡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일일 체험으로 야구장 기자실에서 얻을 수 없는 값진 현장 경험을 얻었고 조명 받진 못하지만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의 순수한 열정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좀 더 다뤄보고 싶다. 아니, 그래야 겠다.
 
niners@sportsworldi.com 사진=강화 김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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