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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벽:김용준 프로의 골프볼 이야기⑧] 마법 같은 볼 폴라라(Polara)

입력 : 2018-07-04 08:00:00 수정 : 2018-07-03 10: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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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만 달러. 원화로는 15억 원 남짓이다. 지난 1980년대 중반에 이만큼 있었다면 지금 가치로는 얼마쯤 될까? 정확히 셈할 수는 없지만 엄청나다. 지난 1985년 미국골프협회(USGA)로부터 이 금액을 합의금으로 받고 USGA 공인구 인증 받기를 포기한 골프볼이 있다. 그 골프볼 이름은 ‘폴라라(Polara)’다.

들어본 적이 있다면 구력이 상당한 골퍼다. 폴라라.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폴라’는 ‘극(極)’이란 뜻 아닌가? 남극과 북극 할 때 그 극 말이다. 무슨 사연일까? 이 볼은 슬라이스를 획기적으로 해결해 관심을 모았다. 처음 시장에 나온 것은 지난 1977년. 미국 화학자 한 명과 물리학자 한 사람이 힘을 합쳐 개발했다. 화학자는 IBM에 근무했고 물리학자는 대학 교수였다. 폴라라는 당연히 USGA에 공인구로 인증을 해 달라고 신청했다. USGA는 고민 끝에 거부했다. 이유는? 이 볼이 진짜로 슬라이스를 획기적으로 줄여주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폴라라는 무게와 크기 등 다른 조건은 당시 USGA가 정한 공인구 기준을 모두 만족했다. 그러면서도 딤플(골프볼 표면의 옴폭 파진 부분)을 천재적으로 디자인했다. 그래서 슬라이스를 잡았다. 훅도 해결하고. 나도 처음 듣고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였다.

이 볼은 다음과 같은 원리를 갖고 있다. 볼 적도(허리) 부분 딤플을 다른 곳보다 밋밋하게 만든 것이다. 그 부분 딤플이 덜 깊다는 얘기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고? 그 쪽은 바람 영향을 더 받는다. 딤플이 상대적으로 깊은 다른 부분은 바람 영향을 덜 받고. 그래서 볼이 위아래로는 더 잘 회전하고 수평 방향으로는 변화가 덜 일어나는 것이다. 폴라라 개발자들은 매그너스 효과(비행하는 물체가 받는 바람의 영향)를 깊게 이해한 것이 틀림 없다.

그 효과는 놀라웠다. 제조사는 75% 정도 슬라이스나 훅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USGA는 이 마법 같은 볼을 만나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공인구 인증을 거부했다. 그런데 공들여 개발한 볼을 쉽게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럴 정도로 집념이 약하다면 이런 골프볼을 개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폴라라는 당연히 USGA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 소송은 몇 년을 끌었다. 그래서 결국 누가 이겼냐고? 맨 처음에 말한 것처럼 합의로 끝났다. 당시 USGA가 고시한 공인구 기준으로는 이 볼을 인증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던 모양이다. 공인구 인증 받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폴라라측에 거액을 합의금으로 준 것을 보면 말이다.

폴라라는 그렇게 세상에서 잊혀졌다. 그러다 지난 2010년 폴라라가 세상에 다시 등장했다. 다른 회사가 그 특허를 사들여 다시 시장에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폴라라는 다시 화제가 됐다. 여전히 공인구 인증을 받지 못했지만 그 사이 USGA가 공인구 규정에서 딤플에 관한 조항을 보강했기 때문이다. USGA가 바보는 아니지 않겠는가? 서로 대칭하는 부분 딤플 조합이 같아야 한다는 조항 등을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로서 골프’와 ‘스포츠 용품으로서 골프볼’에 대한 정의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그 기준들을 방어했다. “아무렇게나 볼을 반듯이 페어웨이로 보내고 싶다면 아예 들고 가서 내려 놓으라”는 코멘트로 말이다.

USGA의 명분이 먹혔던지 제조사가 마케팅을 시원찮게 했던지 하여간 폴라라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폴라라 제조업체는 파산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솔깃한 독자라도 지금은 폴라라를 국내 골프 샵에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이다. 비록 공인구는 아니지만 폴라라는 고반발이라고 골퍼를 속이는 다른 비공인구와는 근본 철학이 다르다. 적어도 두 과학도가 이 볼을 처음 고안할 때는 공인구 규정 안에서 노력했기 때문이다. 골퍼들이 더 좋은 스코어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두 사람이 흘린 땀을 나는 존경한다.

김용준 프로(한국프로골프협회 경기위원 겸 엑스페론골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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