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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93. 제주 4.3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며

입력 : 2018-04-01 18:55:55 수정 : 2018-04-01 18: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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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유채꽃 축제가 열리면 제주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제주도는 삼다도와 신혼여행지의 과거 이미지를 탈피하고 요즘은 걸으면서 마음을 비우고 쉴 수 있는 힐링의 섬으로 많이 인식되고 있다. 외지인은 제주도에서 마음을 치료하지만 정작 제주도민에게는 좀처럼 아물지 않은 아픔이 있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에 한이 없는 곳이 없겠지만 제주도는 그 아픔이 유독 길었다.

제주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1270년 고려 원종 때 김통정이 삼별초를 거느리고 섬으로 들어와 몽골과 최후 항쟁을 벌인 곳이다. 3년 후 원의 직할지가 된 뒤, 원은 이곳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해 다루가치를 파견하고 제주에 목마장을 세워 말, 소, 나귀들을 방목하기 시작했다. 무려 20여 년간, 제주는 고려가 아닌 원나라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제주도는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조선 땅에서 가장 먼 유배지인 이곳으로 보내지는 자들은 정권에 위협적이거나 죄가 무거운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백 높은 선비들이 많았으니 그들의 한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왕에게 유황오리를 먹여 시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장금이가 유배간 곳도 제주도가 아닌가.

제주도민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4.3사건이다. 수많은 도민이 목숨을 잃은 4.3사건은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 대립이 이 땅에 안겨준 최초의 비극이었다. 너무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여 한동안 4.3사건에 대해 제주도민들은 말을 하지 않으려했다. 1987년 6월 이후에야 비로소 진상이 규명되기 시작했고, 정부에서는 특별법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희생자들 치유에 나서고 있다.

제주도가 6.25 전쟁 전의 일이었다면 경남 거창에서 있었던 사건은 전쟁 중에 일어났다. 1951년 2월 국군 화랑사단 모 연대에 의해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무고한 양민 수백 명이 죽임을 당했다. 아무리 전쟁 중이었다고 해도 희생이 너무나 커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내가 이 두 사건을 잊지 못하는 것은 희생자 영가들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의 한을 달래기 위한 구명시식을 추진했으나 하지 못했다. 때가 아니었는지 더 큰일이 발생하여 미루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4.3사건 피해자 영가들을 위한 구명시식을 강행하기로 한 날의 아침, 제주도에 갑자기 폭우와 낙뢰가 쳤다. 기상악화로 제주도로 가는 항공기가 줄줄이 결항됐다.

아쉬움과 다행이라는 마음이 묘하게 교차하던 차에 내가 예약한 비행기는 정상적으로 운행이 가능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구명시식을 올리게 되었다. 구명시식을 올리던 날 밤, 제주도에는 기상관측 이래로 두 번째로 많은 번개가 쳤다고 한다. 여름이 아닌 봄에 무려 4만9000번의 번개가 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늘의 번개는 거창에서도 있었다. 거창 연극제에 참가하여 연극 ‘구명시식’ 공연으로 희생자를 위로할 때 영혼의 목소리가 청명한 바람이 스치는 수승대에 울려 퍼졌다. 검은 먹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 치더니 땅이 쪼개지는 듯한 뇌성이 귓전을 때렸다.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 소리는 영혼이 왔다는 울부짖음이었던 것.

나는 내 눈에 보인 수백 명 영가의 숫자에 놀라고 말았다. 제주도나 거창의 하늘에서 들렸던 뇌성은 억울한 영혼들의 집단 출현을 알리는 표시였던 것이다. 제주도 4.3사건이 발생한지 올해가 70년이 되는 해이다. 긴 세월이 지났어도 깊게 박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한다. 해원하고 화해와 상생으로 거듭나기 위해 상처를 어루만지는 정부의 노력이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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