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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85. 서대문형무소와 미루나무

입력 : 2018-03-04 18:55:53 수정 : 2018-03-04 18: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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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주년 3.1절 기념식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렸다.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이라는 주제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3.1절의 상징성과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이 아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개최한 것이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식을 마치고 역사관에서 독립문까지 행진을 한 뒤 시민들과 함께 ‘만세’를 외쳤다.

근대적 시설을 갖춘 최초의 감옥인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출발하여 1987년 11월 의왕으로 이전, 폐쇄될 때까지 약 30만 명의 민족지도자와 독립운동가를 수감하고 처형했던 곳이다. 그런 아픔을 간직한 서대문형무소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건설한다고 했을 때 나는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몸으로 맞서며 지켜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대문형무소 운영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예전에 미루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잘 자라고 있는 나무와 그렇지 못한 나무, 그 미루나무들은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식재되었다고 한다. 사형장 앞에 있어서일까, 그 미루나무엔 기분 나쁠 정도로 강한 원한의 기운이 가지마다 서슬 퍼렇게 서려 있었다. 17년 전 일본에서 온 일행과 함께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하였을 때, 나는 서대문역사관 안내자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 나무엔 어떤 사연이 있기에 주위 다른 나무들보다 유독 성장이 부진한 것입니까?”라고.

역사관 안내자는 “저기 담장 너머로 미루나무 한 그루가 또 있습니다. 저 나무와 이 나무는 동시에 심어졌습니다. 나이테를 분석한 결과 같은 때 심어진 것임이 확인되었죠. 그런데 유독 사형장 안에 미루나무는 잘 자라지 못했습니다.” 사형장 앞에 있어 사형수들이 들어갈 때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바로 이 미루나무를 붙잡고 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일제에 대항하여 독립을 위해 한 몸을 바쳤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생을 향한 미련,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피맺힌 원한들이 모두 미루나무에 그대로 용해되어 나뭇잎마다 절절이 끓어 넘치니 어찌 나무가 잘 자랄 수 있었겠는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와 동행했던 나고야 거주 재일교포 할머니는 그 미루나무를 붙잡고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분은 꽃다운 나이를 일제의 폭압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며 도대체 그 한과 서러움을 누가 대신 보상해 줄 것이냐며 울분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서대문역사관을 널리 알리는데 써 달라’며 가방에서 100만 엔을 꺼내 기부를 하였다. 담당자는 뜻밖의 기부에 적잖이 당황해 하는 눈치였으나 자유 없는 조국에서 해방만을 기다리며 꽃다운 나이를 억압과 핍박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할머니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담긴 기부금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나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의 기부금으로 서대문역사관을 홍보하는 영상을 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비디오를 일본 나고야에 살고계신 할머니에게 보내드렸다.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애국지사의 한을 고스란히 담았던 그 미루나무는 지난해 8월 세찬 바람에 안타깝게도 쓰러지고 말았다. 광복과 전쟁, 그리고 민주화까지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보았던 미루나무도 오랜 세월 쌓였던 아픔의 상처는 어쩌지 못했으리라. 지금은 통곡의 미루나무만 외로이 서있다.

문화재청은 며칠 전 서대문형무소를 1936년 모습으로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고증을 통해 선별적으로 복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서대문형무소의 일부 건물을 부수고 벽돌을 쓰레기로 버리고, 그나마 남은 벽돌은 통로바닥에 깔았는데 문화재청은 무엇으로 복원하려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쓰러진 미루나무의 아픔을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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