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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82.미륵사지에 숨은 비밀

입력 : 2018-02-20 19:10:22 수정 : 2018-02-20 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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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인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이 17년 만에 보수공사를 마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해체에만 10년이 걸린 석탑은 3000여개의 돌 조각을 하나씩 걷어내고, 일제가 부어 놓은 시멘트를 치석 제거용 기계로 떼어 냈다고 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10월은 돼야 완전히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이자 백제 후기에 중흥기를 이끈 무왕이 지었다고 알려진 미륵사지 석탑에는 놀랄만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 비밀은 미륵사지의 동탑과 서탑 앞에 있는 연못에 있다. 미륵사지는 전형적인 백제 사찰 터를 갖고 있다. 미륵사지는 1탑 1금당을 본 형식으로 3탑 3금당이 들어서 있는 대규모의 사찰 미륵사 터다. 만약 미륵사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그 규모는 신라 황룡사와 쌍벽을 이뤘을 정도의 크기가 될 것이다.

사찰에는 기본적으로 냇물이 흐른다. 이는 바깥세상의 번뇌를 물로 깨끗이 씻어버리라는 정결의 의미를 갖고 있다. 미륵사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에 조성된 연못은 커다란 크기는 아니지만 미려한 장방형의 모양이다. 미륵사지의 지층은 과거 늪지대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다. 늪이었던 곳에 일일이 흙을 깔아 다지고 또 깔고 다지고 하는 작업을 반복, 거대 사찰을 건립한 것이다.

그러므로 냇물 한줄기 없는 곳에 연못이 있는 것은 가히 이상하진 않다. 삼국유사 무왕제 편을 보면 ‘용화사 못에 큰 용이 나타나 탑을 지었다’는 구절이 명백하고 선화공주의 요청에 무왕은 미륵사를 세울 것을 명한다. 미륵사의 창건 설화만으로도 국경을 초월했던 이들 부부의 사랑을 또 다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연못에는 비극적인 사랑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미궁에 빠졌던 사건이다. 10년 동안의 미륵사지 발굴조사가 진행될 무렵, 미륵사지의 연못터도 발굴 대상이었다. 미륵사지에서는 인동초 문양의 벽화 조각 등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 여러 점이 출토됐는데 이는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의 인동초 문양과 같은 맥락의 것이라 학계는 몹시 놀랐다.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남아있는 유물이 아닌 연못에서 발굴된 시신 2구였다. 한 구는 키 170㎝의 남자였고, 또 한 구는 키 150㎝의 여자였다. 당시만 해도 발굴조사에서 나온 인골에 크게 주목하지 않고 부장품에 초점을 맞춰 발굴조사 작업이 진행됐으니 역시 이 2구의 인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나는 2구의 시신이 너무나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인연이었기에 백제 미륵사라는 백제 최고의 사찰 연못에서 남녀 시신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과연 이들은 왜 연못에 있었던 것일까.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연못에서 동반자살을 선택했던 것인지 이것도 아니라면 누군가 살해를 한 것은 아닐까.그때 나는 이 궁금증을 풀고자 미륵사지로 향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미륵사지는 왠지 낯설고 어색했다. 정문을 지나 연못가 앞에 발걸음이 멈춘 나는 연못을 향해 조심스럽게 염사를 시작했다. 내가 본 두 사람은 미륵사 안에서 말 못할 깊은 사랑을 했고 그 이유로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다.

두 사람 모두 높은 신분임에도 단지 해서는 안 되는 사랑을 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채 1300여 년 동안 연못 속에 수장된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물었지만 이제 와 두 사람을 죽인 범인을 알아낸다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발굴조사라는 미명하에 두 사람의 깊은 잠을 우리가 깨운 것은 아닌지, 그리고 어쩌면 연못 안에서 영원히 둘 만의 시간을 갖길 원했는데 후손들이 훼방 놓은 것은 아닌지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만 하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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