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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51. 돈 때문에 깨진 형제 우애

입력 : 2017-10-31 19:25:17 수정 : 2017-10-31 19: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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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독립유공자 및 유족을 청와대로 초청한 오찬 간담회에서 “독립유공자의 자손들은 3대까지 국가로부터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며 보훈 보상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독립유공자에 대해 처우 개선을 약속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나라의 독립을 생각하며 묵묵히 한 길을 걸어간 분과 그 가족들이 긍지를 갖지 않겠는가. 문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예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근거가 남아있지 않는 경우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의 일이다. 지방 공무원으로 일하는 한 분이 구명시식을 청했다. 그는 6·25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지만 주변사람들 말로는 아버님이 ‘독립유공자’가 틀림없다고 했다. “구전(口傳)으로만 아버지께서 독립운동하시다 감옥 생활을 하셨단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밝혀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구체적인 증거가 없으니 아버지를 초혼해서 여쭙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나는 정중히 거절을 했다. 구명시식은 과거의 비밀을 밝히는 목적으로 하는 의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5형제 중 대학을 졸업한 건 자기 뿐이며 다른 형제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힘겹게 살고 있다면서, “아버님이 만약 ‘독립유공자’라면 비록 가난하더라도 평생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열심히 살 수 있는 희망이 되지 않겠습니까?”라며 애절하게 부탁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해서 구명시식을 올리게 되었고, 그의 아버님 영가는 오랜 수감생활에 찌든 얼굴로 나타났다. 아버지 영가는 옥고에 지친 몸을 구명시식 가무단의 노래 가락에 달래었다. 노래가 끝난 뒤 나는 “아버님께서 독립유공자라는 증거가 없어 후손들이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영가는 “할 일을 했을 뿐이고 굳이 그것이 밝혀지는 것은 원치 않으나, 자식들이 원한다면 1년 뒤에는 결실을 볼 것입니다. 만약 결실을 보게 된다면 형제 중 가장 힘들게 살고 있는 막내를 꼭 좀 도우라고 전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곤 사라졌다.

그 일이 있고 3개월 뒤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 일간지 기자가 그의 아버님이 독립운동을 하다 경북 김천과 서대문 형무소에 각각 2년, 3년씩 모두 5년간 복역했다는 기록을 발견해 기사로 내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독립운동하다 신문에 ‘검거’되었다는 보도는 있었지만 ‘수감자 기록’이 없어 독립유공자 판명을 받지 못했는데 천신만고 끝에 수감기록까지 발견되었으니 천행(天幸)입니다.” 사실 그의 아버지 행적은 일제강점기 당시 발간된 신문에서는 명확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모 신문 헤드라인에 ‘某氏가 형량 몇 년 몇 개월의 형을 언도 받았다’는 기사를 어렵게 찾아낸 것. 그 기사 덕분에 그들은 독립유공자 가족으로 인정받아 가문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고, 독립유공자 가족들에게 지급되는 보상금까지 받게 되어 적은 돈이나마 어려운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었다. 연신 내게 “고맙다”며 절을 하는 그를 바라보며 내심 뿌듯해했다. 그런데 1년 뒤 나를 다시 찾아온 그의 얼굴은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구명시식 때 아버님께서 신신당부하며 막내를 도우라했는데 그 뜻을 어기고 큰형님이 보상금을 전부 가져가 쓰고 계십니다. 명예는 되찾았지만 형제간의 화합이 깨지고 말았으니 이를 보고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하는 모양입니다.” 이 말을 하면서도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제는 아버님 제삿날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며 씁쓸해 하던 그는 아버님의 명예를 회복시켜 효도하려 했는데 정작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며 후회했다.

만약 구명시식으로 그의 아버지가 독립유공자임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어찌되었을까. 형제들은 평생 좋은 추억으로 아버지를 회자하며 어려운 형편에도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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