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차길진과 세상만사] 146. 떼인 돈에 얽힌 사연

입력 : 2017-10-15 19:27:10 수정 : 2017-10-15 19:27:10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사람마다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 수만큼 사연도 많을 것이고, 그중에서 돈 때문에 얽힌 사연들이 가장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접한 사연 중에는 한 은행원이 어려운 대출을 해결해 주었더니 오히려 고객으로부터 대출과 관련하여 돈을 요구했다며 무고를 당한 사연도 있었다. 그 후 한라산 정상에서 마주친 고소인은 잘못했다고 말하고는 줄행랑을 쳤다고. 모두가 돈을 떼먹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한다.

떼인 돈으로 인해 기괴한 인연에 휘말린 어느 여인의 이야기다. 10여 년 전 나를 찾아온 40대 여인은 난데없이 수십 개의 통장 다발을 내밀었다. “이것 좀 보세요.” 그녀가 내민 통장 중 하나를 집어 들고 나는 한참을 웃었다. 1회 입금액이 2000원, 3000원 등 만원을 넘지 않은 소액이었다. 다른 통장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어떤 날은 입금액보다 송금수수료가 더 많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돈을 보낸 것일까.

그녀는 누가 보낸 것인 줄 알고 있었다. 기이한 인연을 맺은 여인으로부터 돈이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자기가 번 돈에서 조금씩 떼어 꼬박꼬박 돈을 넣고 있었습니다. 매일 1000원, 2000원씩을 보내니 은행직원이 돈을 모아서 한꺼번에 송금하라고 설득했지만 그녀는 이렇게라도 돈을 보내지 않으면 빚을 갚을 수 없다며 막무가내였다고 합니다. 벌써 4년째입니다.”

송금인과의 인연은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그녀는 가게를 열기 위해 공사를 맡아줄 인테리어 업자를 불렀다. 성실하고 꼼꼼하게 일을 잘해 자연스레 그녀는 그를 믿게 됐다. 그는 마감공사를 앞두고 자재 값으로 200만원을 선불로 달라고 했고, 별 의심 없이 그에게 돈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날 그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200만원을 가지고 그대로 도망친 것이다. 처음엔 속은 게 분해 어떻게든 잡으려고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돈을 받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그녀가 경기도 양주에 지은 전원주택의 부엌설비를 위해 시공업자를 불렀는데 하필 200만원을 떼어먹고 도망친 그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잘 만났다. 내 돈 200만원 내 놔!” 그는 하얗게 질리며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사장님, 딱 5일 만 기다려 주시면 돈을 드리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남겨놓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물론 5일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도 괘씸해 그녀는 그가 적어 놓고 간 주소지를 찾아갔다. 경기도 하남. 가보니 끝도 없이 구불구불 골목이 이어져 찾아가는데도 한참이었다. 드디어 업자의 집에 도착한 그녀는 대문에 들어서며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돈 줄 때까지 한 발자국도 안갈 줄 알아!” 그런데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살려주세요!” 방에 들어가 보니 한 여자가 집에서 출산을 했는지 한 쪽에는 핏덩이 아기가 울고 있었고 산모는 하혈을 하고 있었다. 업자의 부인인 것 같은데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순간 사람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119를 불렀고 병원까지 동행했다. 그런데 응급실 의사가 “수술해야 합니다. 아기도 산모도 위험합니다. 그런데 수술비는 누가 내시나요?” 난처한 상황에 처한 그녀는 할 수 없이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다. 수술비와 입원비, 인큐베이터 비용까지 200만원을 받으러 갔다가 10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말았다.

그날 이후 업자의 부인은 자신과 딸을 살려준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적은 돈이지만 매일 송금을 했다. 그렇게 마음의 빚을 갚고 있었다. “이 많은 통장을 다 합하면 100만 원이 조금 넘습니다. 돈을 다 받으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4살짜리 아이의 웃는 모습을 생각하면 돈 생각은 사라집니다.” 받아야할 돈은 많이 남았지만 그녀는 이미 다 받은 듯 보였다. ‘떼인 돈 받아줍니다’라는 거리의 현수막을 볼 때마다 웃음을 주고 간 그녀가 생각난다.

(hooam.com/ whoiamtv.kr)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