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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41. 어느 노스님의 큰 가르침

입력 : 2017-09-19 19:03:46 수정 : 2017-09-19 19: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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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시식을 하다보면 많은 기이한 일들이 생긴다. 그중에서 스님을 구명시식해준 일들은 좀처럼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알려지지 않아서이지 스님의 구명시식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한국 불교계의 역사였던 큰스님 구명시식을 올리던 중 선원에는 알 수 없는 천상의 향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향기지?” 분명 의식을 위해 피워 놓았던 향에서 나는 향기는 아니었다.

작은 소란이 일어났지만 나는 큰스님영가의 지혜로운 법문에 흠뻑 빠져 있었다. 향기의 진원지는 바로 큰스님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존경했던 큰스님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생전 대중에게 설법했던 그 모습 그대로 꼿꼿한 자태를 드러내며 극락의 향을 법당에 흩뿌리고 있었다.

구명시식을 청한 이는 큰스님의 법제자인 스님으로 평소 큰스님의 열반에 대해 석연치 않은 의문점을 갖고 있었다. 1970년대 열반하신 큰스님은 돌아가시기 이틀 전만해도 1000여 명의 불자들 앞에서 설법을 했을 정도로 건강했다. 물론 언중에는 자신의 열반에 대해 이런저런 암시를 했지만 이틀만에 갑자기 찾아온 큰스님의 열반은 스님에겐 큰 충격이었다.

열반하신지 30년이 넘었지만, 스님은 스승의 마지막 길을 편하게 해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결국 스님은 내게 구명시식을 청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예전에 일본 천태종 대승정을 지낸 노스님이 내게 구명시식을 받고 이를 일본에 널리 알린 일은 있었으나 우리나라 스님들은 구명시식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더욱이 한국 불교계의 거목인 큰스님의 구명시식 자체는 철저히 비밀로 부쳐진 채 의식이 진행됐다.

스님은 큰스님영가께서 왔다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칠십이 넘은 법제자의 눈물을 본 영가는 인자하신 아버지처럼 부드럽게 타이르며 “너는 정말 정이 많아서 탈이다. 내 죽음을 석연치 않게 생각하지 마라. 나는 내 과보를 잘 안다. 미리 알고 다 알아서 한 것인데 30년이 넘도록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느냐”라고 했다.

우리 눈에는 생사가 있으나 큰스님께는 생사가 없었다. 법제자인 스님은 열반 시 의혹으로 불거진 문제들을 가슴속에 묻고 살았으나 큰스님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업을 달갑게 받고 오히려 두터운 업이 소멸되니 어깨가 한결 가볍다고 하며 너그러운 미소로 내 마음에 연꽃 한 송이를 건넸다.

“차 법사, 당신의 능력은 정말 소중한 것이요. 그 능력을 정말 잘 써야 해요. 능력을 잘 쓰려면 항상 마음 닦는데 정진해야 돼요.” 그 분은 나의 영능력을 인정했다. 어찌 보면 영능력은 운동이나 예술처럼 인격과는 상관없는 천부적 능력 중 하나이다. 큰스님은 내 영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그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조용히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큰스님영가께 큰 절을 올린 뒤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목련존자에 얽힌 일화를 떠올렸다. 부처님 제자인 목련존자가 친구 사리불과 함께 부처님께 신임을 받아 양발 구실을 하고 있을 때, 이교도들은 두 사람을 죽이면 부처님의 위광도 꺼질 것이라 생각하고 가장 완강한 제자였던 목련존자부터 없애기로 했다.

어느 날 목련존자가 수행하던 중, 이교도는 돈으로 매수한 부랑자를 시켜 목련존자를 돌팔매질하니 결국 목련존자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가장 사랑하는 제자 중 하나인 목련존자가 이교도의 돌에 맞아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크게 놀라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생사는 깨닫는 자에게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목련이 해를 입은 것은 한없이 아름답기만 하구나.”

그동안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구명시식을 신청했지만 생사를 초월한 큰스님의 구명시식은 내가 가장 기억하는 구명시식 중 하나이다. 내 오랜 구명시식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은 가장 영광스런 의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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